'콘트롤타워' 없었던 14년, 옥시 사태 키웠다

정부의 '관리 부재'는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불러온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가습기 살균제를 주도적으로 관리할 콘트롤타워가 없었던 14년간 유독물질이 섞인 제품이 허가 받고 판매돼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사전에 막을 수 있던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독물질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에 사용될 길을 터 준 것은 환경부였다. 환경부는 1997년 관보에 'PHMG는 유독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고시했다. PHMG 제조사인 유공(현 SK케미칼 (44,900원 ▲500 +1.13%))이 이 물질에 대한 제조신고서를 제출한 데 따른 심사 결과였다. 이에 따라 PHMG는 '유독물질이 아니다'는 정부 확인을 받고 시장에 풀리게 됐고,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들은 이 물질을 제품에 사용하게 됐다.

PHMG가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허가해 준 것은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였다. 산업부가 처음에 허가해 준 제품의 용도는 '세정제'였다. 세정제는 '일반 화학가정용품'으로 분류돼 산업부가 관리하던 품목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당시 PHMG가 흡입독성이 있다는 점이 고시됐다면 제한물질로 분류하거나 추가로 심사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와 산업부를 거쳐 '세정제'로 허가된 제품은 이름을 '살균제'로 바꿔 달고 팔리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 가습기 살균제는 정부 어느 부처의 관리도 받지 않는 제품이 됐다. 당시 살균제는 이를 규제할 관련 법령이 없던 탓에 자유롭게 팔 수 있는 물품이었다.

산업부는 관리소관이던 '세정제'가 '살균제'로 둔갑돼 팔린 사실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세정제에서 살균제로 이름을 바꿔 판매된 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옥시 등 제조사들이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고 물에 넣어 사용해도 된다는 광고 문구를 사용했지만, 산업부는 별다른 제제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살균제'를 관리할 '콘트롤타워'가 없었다고 해도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제한할 방법은 있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위원회가 2014년 발간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백서에는 "PHMG는 2003년 당시 유독물질에 해당될 정도의 강한 독성을 가진 물질이란 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명시돼 있다. 2003년에라도 환경부가 유독물질 여부에 대한 추가 심사를 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셈이다. 환경부는 그러나 2003년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또 다른 유독물질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까지 유해성 심사에서 통과시켜 줬다.


살균제를 규제할 주무부처가 마련된 것은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산모 4명이 사망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표면 위로 드러난 2011년이었다. 그 해 11월 국무조정실과 환경부, 보건복지부가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규정했고,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를 관리하게 됐다. 1997년 'PHMG'가 유해물질이 아니라는 환경부 고시 후 무려 14년간 이 제품을 제대로 규제할 콘트롤타워가 없었던 셈이다.

가습기 살균제 규제가 식약처 소관으로 넘어온 뒤 흡입독성시험 자료를 제출하고 허가신청이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는 한 건도 없다. 정부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주무부처가 보다 빨리 마련돼 관리했다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