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남 얘기" 할리데이비슨코리아 비결은

기흥모터스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이 가족을 동반한 회사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기흥모터스 제공

짙은 색 두건에 콧수염, 그리고 금속성 장식이 달린 가죽 재킷과 가죽 장화.

대형 고급 모터사이클의 대명사 '할리데이비슨' 하면 '상남자'가 떠오른다.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이 거친 배기음과 함께 떼를 지어 달리는 모습을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할리데이비슨을 타면 누구나 '상남자'의 전형, 배우 최민수가 될 것 같다.


그런 할리데이비슨을 판매하는 회사라면 어떨까. 팔뚝에 문신을 한 근육질의 남성들이 검은 민소매 옷을 입고 검은 두건을 쓰고 근무하지 않을까.

국내 할리데이비슨 공식 딜러는 경기 용인시의 기흥모터스(할리데이비슨코리아)다. 그런데 이 회사가 모터사이클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여성 천국'의 직장이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회사의 안방 살림을 책임지는 윤정희 재경팀 이사는 세 자녀의 어머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다자녀' 어머니가 직장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가족친화적 경영 때문이다.


◇'임신' 알리면 매일 6시간만 근무, 취학 자녀 부모에겐 2개월 유급 휴가 = 이 회사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고 워킹맘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2013년부터 미취학 자녀 돌봄 제도인 '아이조아 프라이데이'를 운영하고 있다. 0∼6세 영·유아 자녀를 둔 여직원이라면 매주 금요일 4시간만 근무하고 퇴근을 할 수 있다. 지원부서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2시 퇴근하고, 영업부서는 10시에 출근해 3시에 귀가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여직원이라면 취학일 전후 2개월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특별 휴가를 쓸 수 있다. 준비물뿐 아니라 교과 과정까지 엄마의 손길을 가장 필요한 시기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임직원들은 학부모 총회를 비롯해 다양한 학교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시행했으며 휴가 기간 급여는 기존과 동일하게 지급한다.

또 여직원이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리면 개월 수와 무관하게 매일 2시간 조기 퇴근을 하는 '예비맘 응원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하루에 6시간만 근무하면 된다. 제도 도입 시점은 2013년 10월로, 임신 근로자의 근무시간 단축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2014년 9월보다 훨씬 이전이다.

지난해 기흥모터스가 개최한 할리데이비슨 라이더 패밀리 투어 참석자들이 이벤트를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기흥모터스

여직원뿐 아니라 남자 직원도 육아휴직에 자유롭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육아휴직을 종료하고 6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임직원은 6명인데, 남자도 2명이 포함됐다.

이밖에 회사 텃밭에서 키운 농작물 추수의 기쁨을 임직원, 가족과 함께 나누는 체험 프로그램과 임직원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날 행사 등 다양한 가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같은 제도 시행 이후 기흥모터스의 사전엔 '경단녀'라는 말이 사라졌다. 현재 전체 기흥모터스 임직원은 영업직원을 포함해 161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은 총 33명으로 21%의 비중이다. 여직원 수는 2010년 24명에서 37%가 늘었다. 재경팀의 경우 임원을 포함한 구성원 8명 가운데 7명이 여성이다. 또 지난 10년간 임직원들의 자녀 수는 2명에서 65명으로 연평균 40%가 늘었다.

이계웅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직원들이 입사만 하면 바로 결혼하고 애를 낳는데, 저출산은 딴 세상 얘기 같다"며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윤정희 이사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다자녀를 키우기에 제일 곤란했던 점은 아이들이 아픈 경우였다"며 "한 아이가 나을 때 즈음 다른 아이가 아픈 경우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우선으로 배려해주는 회사문화가 없었다면 벌써 직장 생활을 중단해야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남자가 타는 모터사이클, 결정은 여성이" = 기흥모터스가 가족과 여성을 중심에 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사실은 마케팅을 비롯한 회사 업무에 여성의 아이디어와 세심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흥모터스 관계자는 "할리데이이비슨 라이더들은 대부분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고, 배우자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따라서 마케팅을 할 때 '가족이 즐거워질 수 있는 바이크'라는 점을 내세운다"고 설명했다.

기흥모터스는 라이더와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면서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는 행사인 패밀리투어와 할리데이비슨 클럽 가족들이 참가해 친목을 도모하는 '클럽 윷놀이'등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같은 전략이 적중했는지 회사도 쑥쑥 성장하고 있다. 기흥모터스는 최근 몇년간 할리데이비슨뿐 아니라 에스턴마틴, 맥라렌 등 최고급 수퍼카를 수입해 판매하는 등 사세를 확장했다.

회사 관계자는 "임직원들이 출산과 보육에 대한 걱정을 줄이면 업무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며 "이 또한 회사 성장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