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 이하는 안팔아요"…혼수가전 준비 실제 해보니

/사진=장은선 기자

500만원으로 혼수가전을 살 수 있을까? 본격적인 결혼철을 맞이해 기자들이 직접 가격 비교에 나선 결과 같은 백화점은 물론 유통사 별로 가격 차이가 많이 났다. 또한 제품별 가격견적서를 제공받을 수 없어 발품을 팔아도 정확한 가격비교 자체가 어려웠다.

"그 정도로 맞추시려면 백화점보다는 동네 마트를 가는 게 좋을 거예요"


서울 명동에 위치한 A 백화점의 가전제품 매장. 혼수가전으로 TV·냉장고·에어컨·세탁기를 500~600만원 선에서 구입하려고 한다는 기자에게 직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매장 직원은 요즘 대부분의 예비부부들은 가전제품에 1000만원 정도는 생각하고 온다고 전했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기자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직원은 신혼부부들이 많이 구입한다는 '프리미엄' 제품을 차례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직원은 "가격대가 다소 높기는 하지만 할인율도 (높고) 기능이 복합적으로 들어있어 경제적이다"고 말했다.

직원이 소개한 최신 에어컨 가격은 502만원. '인체 감지 센서가 부착돼 사람이 있는 곳으로 바람을 보내준다'고 소개했다. 인체 감지 센서 하나에 180만원이 늘어난 셈이다.


전체 가격을 묻자 직원은 알아볼 수 없는 작은 글씨로 매장에 붙어있는 정상가격과 할인 가격을 적어내려 갔다. 그리고는 1000만원에 달하는 패키지 상품을 900만원대로 살 수 있고 백화점 카드로 결제할 경우 약 5% 추가할인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개별 제품의 할인 가격과 할인 기준을 정리한 메모를 가져가려고하자 직원은 황급히 제지했다. 개별 패키지 구성 제품의 할인 후 가격은 '비공개'라는 것이 매장정책이라고 밝혔다.

옆에 위치한 다른 브랜드의 가전제품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최신제품을 피해 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들을 내놨다. 이 직원이 제시한 가격은 총 820만원. 사실상 이전 매장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 백화점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B 백화점에선 600만원 초중반대 가격을 제시했다. 국내 주요 제조사 2곳은 각각 50인치 초반대 TV, 지난해 출시된 에어컨과 냉장고, 최신 세탁기로 패키지를 구성했다.

최초가격은 각각 700만원과 760만원. 이후 백화점 할인과 본사 할인을 포함해 10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를 할인해 600만원 초중반 선을 맞출 수 있다고 했다.

더 저렴한 상품을 사기 위해 구형 모델을 고르자 올해 출시된 상품의 할인폭이 커 10~20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신제품을 권했다. 견적서를 가지고 가겠다고 하자 이 백화점에서도 역시 거절했다. 제품별 가격을 따로 받아 적는 것도 불가능해 머리로 가격을 기억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에 위치한 한 제조사 대리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600만원 대의 예산으로 혼수가전을 맞출 수 있느냐고 묻자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 본 그는 680만원을 제시했다. 제품은 대체로 지난해 출시된 구형 모델로 기자가 직접 구성됐다.

하지만 500만원 대의 예산으로 네 가지 가전을 구매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처음 방문했던 백화점 직원의 말처럼 C마트의 가전제품 매장에서 기자는 577만원에 맞춰 견적을 받았다.

/사진=장은선 기자

직원은 기자가 처음 제시한 500~600만원의 예산에 맞춰 제품을 하나씩 추천했다. 대부분 부가 기능이 포함되지 않은 기본 사양의 제품이었다.

직원은 "신제품과 이전 제품의 사양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가전제품의 신제품 출시 주기는 1년 단위"라며 "3~5월 중에 구매하는 것이 저렴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그나마 견적서를 받아올 수 있었다. 다만 직원은 모델별 세부 가격은 알려줄 수 없다며 모델명과 총 견적이 적힌 견적서를 건넸다. 견적서에는 '60만원 할인' 내용이 적혀있었다. 비고란에 함께 적힌 조건은 '제휴 카드 시'. 500만원대 예산으로 견적은 받았지만 해당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카드를 새로 만들고 두 달간 50만원을 사용해야 한다.

종일 가전제품 매장을 돌았지만 손에 들린 견적서는 단 하나였다. 이전에 돌았던 곳에서의 가격은 기억해 적어두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소비자가 직접 브랜드별·제품별 가격을 비교하기에는 힘들었다.

녹색소비자연대 이주홍 국장은 "현재 가전제품 판매방식에 법적으로는 문제 될 것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가격과 같이 소비자가 정확히 알아야 할 정보를 알려주지 않거나 판매점·결제수단·방문일시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너무 큰 상황은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