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 못찾고 쫓겨날 판"…서울市 역세권 청년주택에 임차상인 불만 폭주

서울시의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시범사업지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상권 모습. /사진=김사무엘 기자

"여기 상인들은 다 역세권 개발 안 했으면 하죠. 재개발하면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나는 건데"


지난 2일 만난 중구 충정로역 인근의 사장 김 모씨는 서울시가 역세권 개발을 적극 추진한다는 소식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불경기라 장사도 안 되는데 역세권 재개발로 건물이 철거되면 10년째 장사해오던 가게에서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김씨뿐 아니라 충정로역 일대 상인들은 대부분 "임차 상인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개발한다고 규제만 풀어주는 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가 청년 주거난 해소를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정책에 대해 임차 상인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용도지역 상향 등 규제 완화로 투기 우려는 높아진 반면 개발 과정에서 소외되는 기존 상인 보호에 대한 현실적 대안은 없어 자칫 제2의 '용산참사'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은 서울의 지하철 역세권에 규제를 완화해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 청년 주거난을 해소하겠다는 시의 주거복지·개발사업이다. 제2·3종 일반주거지역인 역세권 용도지역을 준주거지역, 상업지역으로 종상향해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이를 민간 임대주택 공급 확대로 연결시킨다는 구상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 설명회를 여는 등 시는 역세권 개발 정책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힘을 싣고 있다. 이자비용을 지원하거나 자문단을 구성해 사업 속도를 높여 토지·건물주의 참여를 적극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

지역 공인중개소 등에 따르면 시범사업지로 선정된 충정로역세권과 삼각지역세권에서는 개발 계획이 발표된 뒤 토지 매입 문의가 늘어나는 등 투자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중구 중림동의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충정로역 주변은 현재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곳이 많지만 토지주들이 대개 나이가 많아 사업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역세권 2030 사업을 한다면 외부 투자자들이 땅을 사 사업을 벌일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의 공인중개소에서도 "건물 매입 문의가 많아지면서 건물주들이 기존 내놨던 매물을 거둬들이는 추세"라며 "용산 일대에 개발 호재가 많아 호가가 거듭 올라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삼각지역 인근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최 모씨는 "10여 년 전에 권리금 5000만원을 주고 들어왔는데 건물이 철거되면 빈손으로 나와야 한다"며 "용산참사를 근처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여기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용산참사는 2009년 용산4구역 재개발 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점거농성 중인 철거민과 진압 경찰이 충돌하면서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1km 정도 떨어진 삼각지역세권의 상인들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재개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삼각지역 인근에서 15년째 화랑을 운영했다는 김수영 열린화랑 대표는 "여기는 그림, 액자, 미술용품 등을 판매하는 화방 40여 곳이 모여있어 화랑거리로 불리는데 이곳이 개발되면 특색있는 거리가 없어질까 염려된다"며 "대체부지 마련 등 상인들을 위한 대책도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지만 서울시는 건물주와 상인이 개별적으로 합의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역세권 2030 사업은 기본적으로 민간주도사업이기 때문에 세입자 문제는 시에서 관여할 부분이 없다"며 "다만 개발 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하도록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