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롯데사태'…美 비아콤 회장 '정신감정' 변수되나

미국 '미디어 제국' 비아콤이 섬너 레드스톤(92) 명예회장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휘청이고 있다. 레드스톤의 오랜 '심복'과 친딸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인데 레드스톤의 '정신 감정'이 변수로 떠올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30여년간 레드스톤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경영 일선을 책임져온 필립 다우먼 비아콤 회장 겸 CEO(최고경영자)와 조지 에이브럼스 이사는 지난 20일 레드스톤의 딸이자 부회장인 샤리 레드스톤을 상대로 매사추세츠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레드스톤의 새 변호사가 지난 20일 다우먼 회장과 에이브럼스 이사에게 신탁 제명 사실을 통보하자 이들은 딸 샤리 부회장이 신경장애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조종해 그의 유산 상속 계획을 불법적으로 조작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레드스톤의 정신 건강에 이상이 있다며 정신 감정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레드스톤은 자신이 사망할 경우 미디어 사업에 대한 자신의 지분을 딸 샤리와 다우먼 회장, 에이브럼스 이사 등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구성된 신탁에 맡기겠다는 내용의 상속 계획을 세웠다. 레드스톤은 영화사 파라마운트스튜디오와 MTV, 니켈로디온 등의 케이블 채널을 보유한 비아콤, 인기 시사프로그램 '60분(60 Minutes)'과 '빅뱅이론' 등을 만든 미국 공중파 방송사 CBS 등 시가총액 400억달러에 달하는 '미디어 제국' 의결권의 8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주 다우먼 회장과 에이브럼스 이사가 신탁에서 빠진 자리엔 딸 샤리의 측근 2명이 빈 자리를 채웠다. 다우먼 회장과 에이브럼스 이사는 샤리가 사실상 레드스톤의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했고 이들의 해고 과정에서 아버지 레드스톤을 조종했다고 주장한다. 신탁의 과반수를 획득해 레드스톤 사후 미디어 제국을 통째로 물려받겠다는 심산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샤리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그는 다우먼 회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해왔다. 특히 비아콤의 주가가 지난 2년간 50% 넘게 곤두박칠치는 데도 다우먼이 보너스 1700만달러를 포함해 총 5400만달러의 고액연봉을 받은 점을 공개적으로 문제삼았다.

양측은 모두 지난해 레드스톤의 전 여자친구이자 건강관리인으로 있었던 마뉴엘라 헤르처가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 쓰인 자료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헤르처는 레드스톤이 자신을 해고하고 유산 상속에서 제외했을 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며 정신 감정을 요구했다. 헤르처는 2014년 중반부터 레드스톤이 인지능력이 약화됐다며 '살아있는 유령'이었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지난 9일 헤르처가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다우먼 회장과 에이브럼스 이사 측은 레드스톤이 최근 자신의 본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등 간단한 질문에도 답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최근 레드스톤을 진단한 의사에 따르면 그가 색깔이나 간단한 모양도 구분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투자자들은 레드스톤의 정신 건강 문제가 공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크레디스위스는 최근 투자노트에서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비아콤과 CBS 이사회가 각각 레드스톤의 정신 건강을 확인해야 하는 압력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