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무더기 리베이트 의혹에 '규제완화' 정책 흔들리나

지난 23일 전북지방경찰청 기자실에서 지능수사팀이 18억대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한 J병원 이사장 등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하며 수사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지방의 한 대형병원에서 제약업계의 집단 리베이트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지원정책이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업계 우려가 나온다.


2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전북 전주 J병원 이사장 박모씨가 제약사와 의약품 도매상으로부터 18억원 상당의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경찰에 최근 구속됐다.

유명 여성 프로골퍼의 고모로 알려진 박씨는 2011년 6월부터 2015년 9월 사이 리베이트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차명으로 도매상 2곳을 차려 제약사로부터 비정상적으로 할인된 가격에 약을 사들인 뒤 J병원에는 정상가에 약을 팔아 할인율만큼 마진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300병상 이상 대형병원에는 도매상만 거래를 할 수 있는데 제약사는 도매상에 줄을 설 수밖에 없어 할인된 가격에 약을 공급하던 관행이 있었다"며 "병원이 특정 도매상으로부터 물건을 대량 공급받으면 제약사는 해당 도매상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병원이 지위를 이용해 도매상을 두고 제약사로부터 헐값에 약을 공급받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약사법(47조 4항)은 의료기관 개설자가 운영하는 도매상과 의료기관 사이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이 사건을 두고 제약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는 문제의 도매상과 거래를 한 29개 제약사가 수사 선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리베이트를 약값 인하 여력의 근거로 보고 수차례 약가 일괄인하를 단행했던 정부를 비판했던 업계로서는 할 말이 없어진 셈이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실거래가 약가인하 주기를 1년에서 2년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깊이 있게 추진하는 와중에 사건이 벌어진 데 주목한다. 복지부는 6월 이 방안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었다.

실거래가 약가인하 주기 조정은 업계의 숙원 중 하나다. 매출에 악영향을 주는 요인을 크게 완화할 수 있어서다.

제약·바이오산업 규제 완화를 통한 육성에 힘을 쏟던 복지부도 J병원 사건에 난감한 표정이다.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제약업계에 정부가 잇달아 산업육성 방안을 내놓는 데 여론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더욱이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 개편과 연구개발(R&D) 세제지원 등 방안을 상반기 중 발표하겠다고 공표한 상황이어서 운신의 폭이 좁다.

복지부 관계자는 "불법 리베이트는 보험급여를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고강도 규제가 있기 때문에 산업 육성과 별개로 봐야 할 것 같다"며 "그러나 약가가 준조세인 건강보험과 관련이 큰 만큼 제약사들이 무더기로 연루된 이번 사건에 국민 정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J병원 사건에 제약사가 관여했는지 여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며 조심스런 입장이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제약사들이 실제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날 경우 정부 규제 완화 기조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 크다"며 "그러나 불법 관행을 퇴출하기 위해 업계가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