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한국거래소 지주사 전환 늦으면 안돼"

한국거래소가 글로벌 거래소들을 모델 삼아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증시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외 거래소 관계자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다양한 대안도 제시했다.

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개최된 '2016 한국 자본시장 컨퍼런스'에서 안상환 한국거래소 부이사장은 "저출산·저성장으로 수출 모멘텀이 약해지고 경제성장률은 2~3%로 정체됐다"며 "이 같은 시장 상황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안 부이사장은 '글로벌 거래소의 새로운 가치 창출 및 성장 전략' 분과세션에서 "역동적인 자본시장의 미래를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플랫폼 변화를 계획 중"이라며 "앞으로 비즈니스 중심 조직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래소 구조개편의 필요성 및 추진방향'을 주제로 발표를 준비한 정창희 거래소 상무(경영지원본부 본부장보)는 지주회사 전환과 거래소 IPO(기업공개)를 기본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거래소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한국거래소지주(가칭)를 세우고 코스피, 코스닥, 파생상품시장을 자회사 형태로 분리하는 게 골자다. 시장감시 기능은 비영리 기관인 시장감시법인이 맡고, 청산기능은 전문화된 청산회사를 별도로 설립해 맡긴다는 복안이다.


거래소는 이를 통해 △시장 간 경쟁으로 기업 상장부담 경감 및 서비스 개선 △기업 자금조달 기회 확대 △투자대상 확대 △시장 간 신상품 개발경쟁 및 해외 연계사업확대 △수익구조 다변화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정 상무는 "기업 자금조달 수단의 패러다임이, 기존 대출에 의존하는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이는 고령화 등 저성장 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코스닥과 코넥스를 중심으로 스타트업이나 중소·벤처기업 등 성장형·기술형 기업들을 위한 모험자본시장 육성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주회사 전환은 사업 다각화 기반이 되는 만큼 신규사업 추진도 빨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 상무는 "기존 단일법인으로서 백화점식 사업수행의 한계가 있었다"며 "구조개편을 통해 시장·기능별 전문성이 제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 상무는 "현재 한국거래소가 보유한 M&A(인수·합병) 자금은 약 2000억원으로 현저히 부족한 수준"이라며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해외 M&A와 조인트벤쳐 설립 등 거래소의 글로벌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자본시장 컨퍼런스/사진=구유나 기자

호헤이 알레그리아 전 멕시코 파생거래소 이사장은 멕시코거래소의 상장 사례를 소개했다. 멕시코거래소의 상장 결정에는 중남미 지역 최대 규모인 브라질 거래소 상장이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그는 "중남미에서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지만 멕시코거래소가 상장된 이후 고객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거래의 투명성도 얻었다"고 말했다. 상장 후 멕시코거래소의 종목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거래되기 시작했다.

멕시코거래소는 과거 30여명에 이르던 이사회 수를 15명 정도로 대폭 줄였고 업계 출신 사외이사도 배제했다. 알레그리아 전 이사장은 "이런 과정을 거듭해야 효율적이고 전략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윌리암 브로스키 CBOE(시카고옵션거래소)지주 의장도 "지주사로 전환된 거래소에서는 이사들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CME(시카고상품거래소)와 합병, 지주사로 전환한 CBOE는 이사장과 CEO 외에는 모두 업계와 무관한 이사들로 이사회를 채웠다.

브로스키 의장은 "선물거래소를 규제하는 별도의 법인이 있고, 옵션거래소도 여러 사업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면서 경영의 유연성과 효율성이 개선됐다"며 "공익적 측면을 고려하면 상장기업들에게 기대하는 지배구조가 거래소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은 앞으로 금융자본시장이 더욱 발전할 잠재력이 있는 국가"라며 "상장된 거래소가 있어야만 그 잠재력이 발휘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츠시 사이토 전 일본 JPX(일본거래소)그룹 CEO는 "거래소는 영리를 추구해야하는 동시에 공익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하는 조직"이라며 "한국에는 복잡한 문화적·정치적 상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