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대신 보험 들라는 은행…제2의 역마진 쇼크 오나

“당장 급하게 쓰실 돈 아니면 예금 말고 보험 드세요.”

요즘 시중은행에 정기예금을 가입하러 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얘기다. 초저금리로 예금금리가 추락하자 은행들이 고금리에 비과세 혜택까지 제공하는 방카쉬랑스(은행에서 파는 보험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리 인하로 고객이나 은행 모두에 매력이 떨어진 정기예금을 팔아 힘들게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방카쉬랑스 판매로 수수료 수익을 올리는 편을 택한 것이다.

◇“예금 대신 방카쉬랑스”…기업 여윳돈까지 몰려=한화생명은 올해 1~4월에 월납 초회 보험료 기준으로 방카쉬랑스를 7669억원어치 판매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819억원에 비해 4배 이상 급증한 규모다. 한화생명은 방카쉬랑스 중에 인기가 가장 많았던 최저보증이율 2.75%짜리 고금리 상품은 지난 4월 1일부터 판매 중단했다. 판매가 급증하는데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에서 최저보증이율 2.75%를 맞춰주기가 어려워서다.


동양생명도 올해 1~5월 방카쉬랑스 판매 실적이 16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3억원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동양생명의 최저보증이율은 지난해 3.25%에서 올해 2.38%로 낮아졌으나 업계 최고 수준이다. 초저금리로 예금금리가 떨어지자 원금은 물론 최저 이율까지 보장해주는 안전자산인 방카쉬랑스로 돈이 몰리는 양상이다.

올들어 기준금리가 1.25%로 떨어지면서 현재 시중은행의 예금금리는 1%대 초반으로 내려갔다. 신한은행은 한달짜리 정기예금 금리가 연 1.1%,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가 연 1.3%다. 예금은 돈을 오래 묶어 놓아도 금리 메리트가 거의 없다. 반면 방카쉬랑스는 금리가 아무리 떨어져도 무조건 보장하는 최저보증이율이 2%대 중반인데다 10년 이상 유지하면 비과세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고액자산가들이 주고객인 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센터의 경우 기업자금까지 방카쉬랑스로 몰리는 추세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개인 고객은 말할 것도 없고 중소기업 오너들이 회사 여유자금도 방카쉬랑스에 넣어두려 한다”며 “은행들도 수수료 수익을 챙길 수 있는 방카쉬랑스를 권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리역습 현재진행형…‘제2의 역마진사태’ 올라=방카쉬랑스로 최저보증이율이 높은 상품을 많이 팔면 중장기적으로 보험사의 금리 리스크가 커진다.

보험사들이 방카쉬랑스에서 약속한 최저보증이율 이상의 투자수익률을 계속 올릴 수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수익률이 최저보증이율보다 떨어지면 역마진으로 손실을 입게 된다.


생명보험사들은 지금도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확정금리로 판매한 고금리 상품에서 대규모 역마진이 발생해 손실이 날로 커지고 있다. 국내 25개 생명보험사의 금리 역마진 위험액은 지난해말 기준 2조7070억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고금리 방카쉬랑스를 계속 판매하는 이유는 단기간에 시장점유율을 높여 외형을 키우고 실적을 늘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은행은 방카쉬랑스를 팔아 수수료만 챙기면 되지만 보험사는 장기적으로 약속한 이율을 지급해야 하는 등 관리 부담을 계속 져야 한다”며 “리스크가 큰데도 보험사들은 단기적인 실적 관리 때문에 고금리 방카쉬랑스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보험사의 고금리 마케팅이 자산건전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직접 제동은 걸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험상품을 자율화한 만큼 금융감독원이 나서서 각 보험사 상품의 이율을 세세하게 간섭할 수는 없다”며 “단기 실적을 채우려 고금리 상품을 판매하면 향후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는 만큼 보험사들이 장기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