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죽었다'는 노숙자 소송통해 되살린 경찰

금천경찰서 문성지구대 김정연 경위

8년간 사망자 신분으로 살아온 노숙자를 도와 신분회복을 돕고 가족들과 재회를 시켜준 경찰관의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서울 금천경찰서 문성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김정연 경위가 주인공이다.


올해 57세인 A씨는 사업실패로 인한 우울증으로 2003년 집을 나와 가족과 연락을 끊고 노숙자 신세로 살았다. 길거리나 공원, 지하철역에서 지내거나 노숙자 시설을 전전했다.

A씨의 동생은 형과의 연락이 끊기자 실종신고를 냈고, 시간이 흘러 2009년 자동으로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가족들도 그가 죽은 줄로 알고 찾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정작 A씨 자신은 5년 전에야 본인이 사망자 신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임시직으로 다니던 공장에서 부상을 당했는데 보험신분 확인과정에서 사망으로 인한 주민등록 말소 사실을 접한 것이다.

이후 신분복원을 위해 주민센터나 법원을 찾아 신분을 복권하려 했으나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주민등록증도 분실한 상태여서 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떼기 어려웠다. 결국 다시 노숙자 생활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A씨가 도움의 손길을 받은 건 1년전.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김 경위를 만나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김 경위는 "역 주변을 순찰하다가 A씨를 만났는데 노숙자 치고는 옷차림이 너무 말끔해서 처음에는 사연을 믿기 어려웠다"며 "노숙자 시설을 매일 같이 찾아 샤워를 하고, 깨끗한 지원의류를 입고 있다는 말을 듣고야 납득이 갔다"고 말했다.

A씨와 헤어진 김 경위는 딱한 사정에 도움을 주기로 마음 먹었으나, 흔한 휴대폰조차 없는 노숙자 A씨를 다시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후 그를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차에 4개월 전 간신히 A씨와 연락이 닿았다.

김 경위는 A씨를 데리고 구로동 주민센터를 찾아 호적등본을 발급, 이를 토대로 인천가정법원에 실종선고 취소청구소송을 냈다. 이를 통하면 절차가 간단한데, 이전까지 A씨에게 이를 알려주는 이들이 없어 상당시간이 허비됐다는 게 김 경위의 설명이다. 모든 비용은 김 경위가 부담했다.

현재 김 경위는 A씨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중이다. 어머니와 고모, 동생 등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냈고, 근무 외 시간에 짬을 내 친구들과도 만나는 자리도 마련했다.

수년 전 타계했다는 A씨 선친을 찾아 성묘도 함께 했다. 건강이 위독하다는 모친은 "죽기 전에 아들을 볼 수 있게 해줘 고맙다"며 눈물을 쏟았다. 경찰로서 할 수는 있지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김 경위는 업무적으로도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경찰이다. 지난해 경찰청 베스트 순찰팀에 상반기(지방청 3위, 경찰청 7위)와 하반기(지방청 1위, 경철청 3위) 연이어 선정됐다.

현재 근무하는 순찰팀에서도 선배인 배형환 경감을 중심으로 뛰어난 팀웍을 이루고 있다. 배 경감 팀은 2개월 전 시흥IC공원에서 5000만원 돈가방을 훔쳐 달아나는 범인을 잡아냈는데 김 경위와 팀원들의 협업이 빛을 발했다. 이 밖에 피의자 검거, 범죄예방 등 크고 작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한 피해자는 김 경위에게 "60평생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고 경찰관이 과연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했다. 얼마 전 사건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너무 신속하고 친절하게 일 처리를 해줘 감동했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김 경위는 "경찰로 가장 보람이 있을 때는 피해자들이 건네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들을 때"라며 "기회가 되면 보이스피싱 등 사기범죄를 적발하는 수사업무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