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기업 떼인 돈 쫓아 지구끝까지… "1조원 돌려 받았죠"

김춘수 한국무역보험공사 국외채권팀장이 29일 서울 서린동 본사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한국무역보험공사 제공

"우리 중소기업의 피와 땀이 어린 수출대금을 떼먹은 이들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 가겠다."


김춘수 한국무역보험공사 국외채권팀장은 '데트 컬렉터'다. 우리 기업들의 떼인 수출대금을 받아내기 위해 각국 수입업자를 상대로 채권회수 작업을 전담한다.

중소기업에 해외시장은 성장을 위한 돌파구이지만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이기도 하다. 수출대금을 한 번이라도 받지 못하면 회사 문을 닫을 정도로 휘청거릴 수 있다.

무역보험은 이런 중소기업에 구명줄 역할을 한다. 보험금을 지급해 기업들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 그렇다고 국민의 혈세같은 보험금을 마냥 퍼줄 수는 없다. 사고 채권을 회수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김 팀장은 "우리 기업에 보험금을 지급하면 '보험자 대위권' 원칙에 따라 사고 채권의 주인이 공사로 전환된다"며 "채무자인 수입자에게 결제독촉, 물품전매, 중재, 소송 등 가능한 모든 절차와 수단을 동원해 회수 작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무보가 국내 수출기업에 보험금을 지급하고 넘겨받는 채권은 통상 일반상사채권이다. 무담보채권이라 회수가 극히 어렵다. 특히 해외 채권의 특성상 나라별로 법과 제도가 다르고 빠르게 보전 절차를 시작하는 게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외채권팀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해마다 1000억원가량의 해외 채권을 회수해왔다. 지금까지 누적 채권회수액은 1조원에 달한다.

김 팀장은 "누적 기준으로 30% 이상 회수율을 기록중"이라며 "일반적으로 정책금융기관의 특수채권, 장기채권 등의 연간 회수율이 5%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채권 회수를 하다 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베트남에서는 현지 군대가 동원된 적이 있다. 호찌민시 빈증공단에 위치한 라이터 생산업체 H사가 한국 중소기업 L사로부터 2억원 규모의 사출성형기를 수입했으나 급작스러운 자금사정 악화로 대금을 결제하지 못했다. L사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무보는 L사를 대신해 H사와 협상에 나서 기계를 환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H사에 투자한 현지 기업인이 끼어들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폭력조직 출신인 그가 투자금을 회수할 때까지 H사의 모든 자산을 압류하겠다며 폭력배들을 동원해 공장을 봉쇄한 것.

무보는 베트남 정부를 찾아 문제 해결을 요청했지만 현지 기업인과 유착 관계에 있던 공무원들은 기계 반출을 허가한다는 결정문만 발급해주고 실제 반출은 무보에 떠넘겼다. 무보는 현지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현지 직원의 친구인 군부대 소대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경비가 상대적으로 소홀한 일요일 새벽을 D-데이로 잡고 인근 군부대 병력을 투입해 전격적으로 폭력배를 제압, 반나절 만에 기계를 꺼내 한국행 선박에 실을 수 있었다.

김 팀장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정상적인 거래이고 수입자(채무자)의 계약불이행이 명백함에도 채무자 소재국에서 채권 회수를 하므로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이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빚쟁이'라고 무시 받기 일쑤인 고된 업무지만 그동안 쌓인 노하우를 활용해 채권 회수에 성공할 때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보람을 느낀다. 김 팀장은 "우리 수출기업이 흘린 값진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해외채권추심기관·해외지사·국제채무재조정회의 등 다각적인 회수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고 채권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