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플랫폼 열풍, 원인과 성공포인트

2016년 1분기 일평균 모바일 뱅킹 서비스 이용실적이 5000만건을 넘어서며 전년대비 큰 폭의 이용실적 증가가 이어지고 있다. 모바일을 통한 비대면 은행업무 처리가 대세가 되면서 시중은행들의 플랫폼 쟁탈전이 매우 치열한 상황이다. 이에 더해 가히 모바일 플랫폼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카카오톡 기반의 카카오뱅크까지 가세하면서 적어도 금융산업에서는 한글 창제에 비견할 수 있는 금융플랫폼 개발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플랫폼이란 다양한 종류의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공정한 거래를 통해 지속적으로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조성된 공통적인 기반환경을 말한다. 기반환경이 조성되면 비용절감, 새로운 시장의 창출, 사업 레버리지 확대, 브랜드이미지와 사업의 안정성 제고 등 수많은 새로운 가치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동안 제조, 유통, IT 등 많은 분야에서는 플랫폼의 순기능과 중요성이 잘 알려지고 활용되어 왔다.

그런데, 금융분야에서는 최근에 와서야 플랫폼이 이렇게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원인 중 하나는 저금리로 대표되는 경제환경의 변화다. 업권에 상관없이 금융업의 부가가치는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간의 중개에서 발생하는 마진으로부터 발생한다. 은행은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보험은 위험 선호자와 기피자간의 금전적 교환의사, 자산운용업은 위험자산의 평균적인 수익률과 무위험 자산의 이자율의 차이가 마진의 크기를 결정한다.

금리는 이 모든 마진의 크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변수인데 수년간 저성장 저금리 환경으로 금융산업에서 일대 지각변동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존 사업의 마진 축소와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증가에 대한 돌파구로 금융회사들의 금융플랫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또 하나의 원인은 금융겸업주의로 대표되는 금융제도의 변화다. 하나의 금융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업무의 종류를 어떻게 제한하느냐에 따라 겸업주의와 전업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겸업주의는 한 금융회사가 은행·증권·보험 등 여러 금융서비스를 취급할 수 있는 반면, 전업주의는 은행·증권사·보험사 등이 각각 해당하는 고유의 서비스만을 제공하게 제한하는 방식이다.


2009년 자본시장법에서 금융투자업자의 겸영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게 되면서 금융업권간의 융·복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져 왔는데 바야흐로 이러한 토대가 갑작스럽게 일어난 금융플랫폼 경쟁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지금의 금융플랫폼 열풍은 창조경제로 기획된 '핀테크'와는 달리 오랫동안 금융산업에 내재돼 왔던 제도적 준비와 금융환경적 요인이 적절하게 결합되면서 일어나고 있는 자생적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닐 뿐만 아니라, 어떤 업권, 어떤 기업이 향후 금융산업의 주역이 될 것인가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변화다. 따라서 현재의 금융플랫폼 쟁탈전은 각 금융회사들의 사활이 걸린 나름의 치열한 전투이며 정부와 국민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봐줘야 하는 중요한 경기이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몇 가지 우려되는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과열경쟁이다. 플랫폼의 순기능 중 '네트워크 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한 이용자가 플랫폼에서 얻는 가치가 그 플랫폼에 연결돼 있는 다른 이용자의 수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참여자가 생겨나 임계점을 지나면 그 자체로 별다른 노력이 없이도 이용자가 늘어나서 자체 성장동력이 생겨나게 되지만 이를 반대로 말하면 초기에 적정 이용자 수가 확보되지 않는 플랫폼은 그야말로 재앙인 것이다. 적정한 수의 경쟁자들간의 공정한 경쟁은 바람직하겠지만 최근 이들의 초기 이용자 확보를 위한 비용지출이나 영업형태가 우려를 자아내고 있어 과다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정자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 번째는 플랫폼 이용에 대한 가격결정 부분이다. 플랫폼에 기반을 둔 사업에서 이뤄지는 가격결정은 전통적 가격결정 방식과 매우 다르다. 전통적으로는 비용에 적정 이윤을 붙이는 '비용+마진' 형태의 직접적 가격부과 방식이었다면 플랫폼에서는 어떤 대상에게는 돈을 받지만 어떤 대상에게는 무료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오히려 심지어 고객에게 보조금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계열사와 비계열사간의 플랫폼 이용료 차별이나 고객차별 등 새로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존의 상식에서 벗어나 가격부과 대상과 가격수준을 유연하게 설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데 이에 대비한 각 주체들이 원칙 있고 투명한 가격결정 과정을 제도적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

금융플랫폼 초기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용자의 숫자이다. 더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금융회사들이 갖고 있었던 브랜드 가치나 핵심사업들을 과감히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많은 금융회사들이 플랫폼 확보에 대한 투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는 수십년간 지켜 온 기존의 브랜드 가치나 핵심사업들을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숙고가 더욱 필요해 보인다.

금융플랫폼을 확보하는 일이 매우 매력적인 것일 수는 있겠지만 업권과 기업의 특성에 따라 기존에 영위하고 있는 본질적 가치에 대한 훼손이나 시너지의 정도에서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얼마만큼 나를 버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그것이 지금의 금융플랫폼 경쟁에서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