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유럽대륙의 엇갈린 미래

박중제 메리츠종금증권 투자전략팀장

얼마 전 IMF가 발표한 'Neoliberalism: Oversold?' 라는 보고서가 크게 회자됐다. 내용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9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IMF는 신자유주의와 동의어이다. 그러한 IMF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지난 30여년의 성장공식이 폐기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거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바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다. 사실 영국은 신자유주의의 최대 수혜 국가였다. 한때 유럽의 환자였던 영국이 살아난 것은 구조조정과 규제완화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에 가장 적합한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국에서 신자유주의로 인해 악화된 불평등과 갈등이, 브렉시트라는 극단적 형태로 표출되는 것을 보면 역사적 우연의 오묘한 등장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브렉시트 투표가 실시되기 전에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 이루어졌을 때 가져올 파장에 대해 걱정했다. 그런데 우려가 현실이 되었는데 의외로 금융시장은 안정적이다. 심지어 영국 수출주의 비중이 높은 FTSE100 지수는 브렉시트 이전 수준보다 주가가 더 높다. 어디나 투자자들은 아전인수격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현상의 본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번 브렉시트 이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럽대륙으로 파장이 확대되느냐의 여부다. 만약 유럽대륙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면 브렉시트는 재앙의 시작점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이슈가 유럽대륙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그렇게 높게 보지 않는다. 브렉시트 이후 금융시장이 놀랍도록 강한 현상의 본질도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우선 유럽연합의 복잡한 구조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은 1, 2차 세계대전의 패혜속에서 유럽의 자멸을 막기위한 초국가를 건설할 목적으로 잉태됐다. 영국에서 건너간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도 처음에는 개발 국가의 느슨한 연합이었다가 점차 연방국가로 진화해 나간 것도 참고했을 것이다. 통합은 한번에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에 와서도 유럽연합을 크게 나누면 유로를 쓰는 유로존 국가와 그 이외 국가로 나눌 수 있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속해 돈, 상품, 서비스, 사람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통화는 따로 쓰는 국가다.

브렉시트의 파급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브렉시트가 아니라 그렉시트(Grexit: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것)였다면 금융시장은 대혼란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이 유럽대륙의 통화동맹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1차적으로 금융시장의 반응이 차분하다.

두 번째 의문은 유로존 국가들 중에 영국과 같은 사례가 나오지 말란 법이 있냐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나 네덜란드의 반EU 정서는 영국보다도 더 심하다. 그런데 일부의 주장을 가지고 전체 흐름을 오인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유로존은 2012년 이후 훨씬 더 통합된 형태로 진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로존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은 2012년 6월에 열렸던 정상회담이었다. 그때 유럽연합 정상들은 그리스와 스페인이 유로존을 탈퇴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었다. 이때 핵심은 통화동맹을 은행동맹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였다.

스페인의 재정위기가 발생한 근본원인은 은행위기가 재정의 문제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즉 리만사태로 은행 부실이 심해졌고 개별 중앙은행이 없는 상황에서 은행 지원이 온전히 스페인 정부의 부담으로 이어지면서 재정위기로 번진 것이다. 즉 남유럽 재정위기는 유로존이 안고 있던 구조적 모순이 터진 결과였고 2012년 6월에 유럽연합은 유로를 깰 것인지, 더욱 통합할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 섰었다.

당시 유로존은 통합을 선택했다. 유럽 공동의 자금을 모아 스페인이나 그리스의 은행에 지원하는데 합의했다. 그 이후 ECB의 QE나 EIB(유럽투자은행) 역할 확대, 은행 공동 규제 확립 등 더욱 통합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6년 들어 전세계에서 사회, 경제적인 모순이 터지고 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은 모순이 누적되어 끓는점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려도 많지만 유럽대륙은 여전히 통합의 길을 지향하고 있다. 소수의 목소리만 듣고 ‘유럽의 꿈’이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길게 보면 낙관주의가 승리한다고 했던가, 금융시장은 이번에도 낙관주의를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