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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雜s] 개·돼지의 조건

머니투데이 김준형 부국장 |입력 : 2016.07.18 05:54|조회 : 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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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40雜s] 개·돼지의 조건

오래전 인도에 갔을 때다. 궁궐처럼 으리으리한 대저택들 앞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거적을 덮은 오두막이 즐비한 광경이 충격적이었다. 동네 집값 떨어진다고 임대주택 입주를 막고 길에 철조망까지 두르는 꼴을 보고 사는 터라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극과 극 계급의 기묘한 코아비타숑(동거)은 최상위 지배계급의 똘레랑스(관용)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최하위 '불가촉 천민'은 사람이 아니라 개 돼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들이 신경 쓰이지도 않고, 그들이 어떻게 쳐다보든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게 현지 사람의 설명이었다. 마치 아프리카 흑인 노예 앞에서 백인 귀부인들이 엉덩이를 내놓고 오줌을 누는게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처럼.

#이전 직장에서 입사한지 얼마 안돼 미국 특파원 생활을 할 때 일이다. 얼마 안되는 신입 기자 월급에, 박하디 박한 체재비 쪼개 쓰느라 최대한 싼 중고차를 고르고 있을 때였다. 회사 사주가 현지에 와서 저녁을 같이 할 일이 있었다. 여러 이야기 도중에 그는 유학중인 대학생 아들에게 차를 하나 사줘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벤츠 요즘 싼거 많아, C클래스는 3만달러 밖에 안하더라고..." 앞에 앉아 있는 직원이 지역 신문에서 눈이 빠져라 2000달러짜리 차를 훑고 있던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겠지만, 알았던들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군왕무치(君王無恥)'라고 했다.
어디 군왕 뿐인가. 자신과 남의 신분을 구별하는게 몸에 밴 수많은 '소군왕'들은 뇌 기능 가운데 타인의 처지와 생각을 담아두는 부분이 퇴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수치심의 기준도 달라진다.

천억원 단위가 넘는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납품업자에게 수십억원의 뒷돈을 받았다가 구속되는 기업인은 내가 왜 구속돼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한다. 망해가는 회사에서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고, 자기 주식부터 팔아 돈을 챙기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용가치'를 넘어선 돈을 축적한 이들일 수록 "돈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우아한 말을 입에 달고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끝자리 시급 몇십 몇백원이 곧 밥이고 목숨이라는 걸 외면한다. "당신들이 그 돈으로 살아봐라"라는 외침을 무식하고 불온한 반시장적 요구로 여긴다. 온갖 터무니없는 갑질로 물의를 일으키는 이들이 실은 더 심각한 체제 위협세력인데도 말이다.

한 공직자가 저녁 식사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가 자리에서 쫓겨났다. 주변 사람들과 나눠 왔던 '다 아는 이야기'였던 터라 그 정도는 받아들여질 걸로 생각했던게 그 공무원의 실수였을 듯 하다.
'역린(逆鱗)'은 용 뿐 아니라 개 돼지들에게도 있었다. 그렇잖아도 "나 혹시 개 돼지 취급받고 있는거 아냐"라는 의심이 적나라하게 확인된데 대한 분노는 '의외로' 컸다. 정부가 해당 공무원에 대해 이례적으로 신속히 파면결정을 내린건, 그만큼 우리 사회 불평등에 대한 불만수위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걸 심상찮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은 개 돼지"라는 생각은 실은 우리 주변에도 깊이 깔려 있다.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훨씬 못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가 노동자들 스스로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이유다. 자기 권리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인턴, 알바생들에게는 모욕과 착취를 일삼는 이들도 많다.

사람 하나 자른다고, 새삼스레 실상을 자학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은 없다. 경제적 불평등과 편중,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의 독점을 완화시키는 철학적 전환과 정책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성주 지역의 사드배치 반대 시위에 '개 돼지' 구호가 등장한 건, 불평등과 독과점의 축적이 경제나 교육 뿐 아니라 어느 분야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확장성과 휘발성을 가졌다는걸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짐승도 사람 될 수 있다"는 '사다리 철학'을 건국신화에 담고 있는 민족이다(개 돼지가 좀 뭣해서 곰 호랑이가 등장했는지는 모르지만, 곰의 자손이나 개의 자손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사람이 동물과 갈라져 차별화된 시점은 추상적 관념을 머릿 속에 떠올릴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추상적 관념 중의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다른 이들의 형편을 자신과 같이 놓고 볼 수 있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이다.
역지사지 못하는 이들이 개 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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