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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가(DDE)'의 성적을 받아온 아들에게

[줄리아 투자노트]

줄리아 투자노트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입력 : 2016.07.23 07:46|조회 : 3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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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네가 가져온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 성적표에서 'E'를 보고 의아했다. 엄마가 학교 다닐 땐 '수우미양가'로 성적을 표기했는데 너흰 ‘ABC’로 표기하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E’라니. ‘ABCD’ 다음엔 낙제점인 ‘F’인데. 넌 “50점대가 ‘E’야”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줬지. 그러니까 ‘E’는 엄마 시대 때의 ‘가’인 거구나. 네 성적표엔 ‘E’가 하나, ‘D’가 둘이었다. 넌 “나머진 B고 A도 하나 있어, 그래도 C는 없어”라고 또 다정하게 설명해줬다. 그래, ‘A’가 하나 있긴 하지. 그건 체육이더구나. 네 표현대로 하자면 네 성적푠 ‘수우우우우양양가’였다. 내 일생에 성적표에서 진짜 ‘양’과 ‘가’를 확인하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중딩인 네가 게임에 빠져 잠조차 잊었을 때부터 공부 잘하리란 욕심은, 어렵지만 내려놓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에 따르면 2045년이면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 수준을 뛰어넘는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이 된다는데 지금 공부 잘하는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니. 어쩌면 인간보다 뛰어난 AI가 모든 일거리를 싹쓸이 하면서 지금 ‘수수수’를 받는 아이나 너처럼 ‘양양가’를 받는 아이나 대다수가 기계에 일자리를 뺏겨 실업자로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수’나 ‘가’나 별 의미가 없지.

하지만 말이다, 난 너에게 꼭 계단 얘기를 해주고 싶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계단을 걸어 내려 가는게 걸어 올라가는 것보다 쉽다. 문제는 계단을 걸어 내려갈 땐 무릎 관절이 많이 상하는 반면 걸어 올라갈 땐 오히려 무릎 주위의 근육이 튼튼해진다는 거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몸에는 편하지만 건강에 좋기는 계단을 올라가는 거란 말이다. 그런데 세상은 온통 이딴 식으로 이뤄져 있다. 몸과 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마냥 따라가다 보면 망가지고 욕망을 거슬러 불편한 것을 했을 때 궁극적으로 몸과 마음이 좋아지는 거지.

입에 맛있는 것은 케이크와 피자. 햄버거, 라면, 마블링이 잘 된 쇠고기 등이지만 건강에 좋은 것은 거친 현미밥과 쓴 맛조차 느껴지는 산나물, 밍밍한 흰살생선 같은 거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다른 좋아하는 일을 슬렁슬렁하며 지내고 싶지만 그 인생엔 어떤 성취도 없겠지.


신이 존재한다면 그냥 편한대로 살았을 때 몸도 건강해지고 인생도 술술 풀리게 인간을 설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신은 왜 반대로 의지를 거슬러 가며 힘들게 일해야만 좋은 삶을 살도록 만들었을까. 참 심술궂다 싶지만 신은 욕구를 억눌러가며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일을 할 때 당장의 욕망을 충족했을 때 얻어지는 자극적이고 짜릿한 만족과 다른 소박하고 담담한 기쁨을 선사한다.

예를들어 요가를 하면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동작이나 자세를 만들어야 한다. 그 순간은 다리가 찢어질 것 같고 어깨가 아파 끊어질 것 같아 ‘도대체 이 고생을 왜 해야 하나’ 싶지만 그 동작이나 자세를 하고 나면 몸 속에서부터 시원한 느낌이 퍼져 나온다. 또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하고 밥과 나물로 소박한 식사를 하다 보면 삶은 쌀과 나물이 갖고 있는 고유의 담백하면서 은은한, 기분 좋은 맛을 느끼게 된다. 하기 싫은 일이지만 해야 할 일을 했을 때도 이런 식의 담담하고 소박한 성취감이 따라온다.

한없이 편하고 싶고 한없이 입에 맛난 음식만 먹고 싶고 한없이 놀고 싶은 의지를 거슬러 건전하고 옳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해야만 몸과 마음, 궁극적으로 인생 전체가 편안해진다는 세상의 원리를 생각하면, 어쩌면 신이 이 세상을 만들 때 인간에게 기대한 목적은 행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각적인 욕망을 이겨내며 의지에 반해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힘겨운 과정을 통해 인격적으로 단련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너의 ‘양양가’ 성적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 다만 네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다는 것, 네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욕구를 자제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점은 알아줬으면 해. 인생은 녹록치 않아. 그래서 고해라고 하지. 그 힘든 여정 속에서 네가 당장 편하고 좋은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것을 택하는 가운데 잔잔한 기쁨을 느끼기를 바래. 그리고 남의 힘든 삶에서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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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서정훈  | 2016.07.23 23:39

기술특이점이 아니라 상대적 기준값이 되는 것 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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