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3일만에 전회 매진 연극 '햄릿'의 힘은 어디서 나왔나

연극 '햄릿'에서 햄릿(유인촌 분)이 복수하는 장면. /사진제공=신시컴퍼니

개막 3일 만에 27회분 공연 티켓 전석이 매진됐다. 연극 '햄릿'이다. 개막한 지 얼마 안 된 연극 전 회가 매진되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햄릿' 공연장엔 여느 연극 공연장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풍경도 있다. 바로 40~50대 이상 중장년층 관객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는 점이다.


제작사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다른 연극의 경우 2030 세대가 70~80%를 차지하는데 '햄릿'은 40~50대 이상 중년층이 눈에 띄게 많다"며 "인터넷 예매가 친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전화로 예매하거나 자녀를 통해 표를 구입하기도 한다. (전체 관객의) 40%가량 차지하는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흥행과는 거리가 먼 장르로 인식됐던 연극, 그것도 기존 관객층이 아닌 새로운 중장년층 관객이 대거 유입된 연극 '햄릿'의 매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검증된 배우·연출진과 고전이 주는 감동 △ 문화향유 경험과 소비력이 있는 베이비붐 세대를 공략한 점 △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등을 꼽았다.

연극계의 '드림팀'…한데 모인 관록 있는 배우의 힘

흥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시 배우들이다. 혹자는 연극계의 '드림팀', '어벤저스'로 부르기도 한다.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손봉숙, 유인촌, 윤석화, 한명구. 이름만으로 쟁쟁한 배우들이 고(故) 이해랑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의기투합했다.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매진 자체는 배우들의 힘인 것 같다. '전원일기'에 나온 그 유인촌 배우가 맞느냐고 물어보는 분도 계신다"며 "연극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TV에서 한 번씩 볼 수 있던 배우다 보니 많이 보러오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햄릿'은 재해석되거나 하지 않으면 대중적인 연극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캐스팅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제대로 연기하시는 분들이 여러 명 포진해서 나오는 작품이다 보니 신뢰감을 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햄릿'이란 고전이 주는 친숙함도 꼽는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는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에 한정된 지상파 드라마의 한계를 깨 준 작품으로 중년층의 현실적인 고민을 풀어줬다"며 "'햄릿'과 '디어마이프렌즈'를 내용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고전 중의 고전'으로 가장 잘 알려진 희곡이란 점이 젊은 시절 연극을 향유했던 경험이 있는 중장년층에게 반가움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연극 '햄릿'에 출연하는 배우진. 왼쪽부터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사진제공=신시컴퍼니

"돈·시간에 문화향유 욕망 있는 '베이비붐 세대' 정확히 공략"

소비력과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데다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높은 베이비부머 1세대를 정확히 공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나름 과거에 문화생활을 좀 했다고 할 만한 인구, 즉 베이비붐 세대가 중장년층으로 막 유입되고 있는 시기"라며 "이들은 '문화고 뭐고 먹고 사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고 극장을 다니거나 소설을 읽는 등 문화를 즐기던 추억을 간직한 점이 이들 세대의 특징이란 설명이다. 황 평론가는 "문화를 지속적으로 소비하면서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문화 활동' 자체가 좋은 건 알고 있는 세대"라며 "그럼에도 (일상에 치여) 문화활동을 평소에 하지 못하는데 ('햄릿' 정도면) 볼만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 기회가 딱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년 문화'가 전보다 전면에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황 평론가는 "50대는 오히려 젊은 관객에 비해 돈도 시간도 여유로운 편"이라며 "'햄릿'은 퇴직한 사람들을 공략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아이템으로 트렌드를 잘 읽은 기획"이라고 분석했다.

윤석진 교수는 "사실 드라마나 영화 분야에서는 중장년의 문화향유가 많이 일상화됐지만 연극은 조금 늦은 편"이라며 "(중장년층이) 문화향유에 대한 욕망과 열정이 있는 상황에서 조금 더 차별화된 나만의 문화활동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지금 연극 '햄릿'의 매진 행렬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젊은 날의 감성 회복"…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다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등 화려한 기술과 융복합 콘텐츠가 주목받는 상황에서 오히려 연기력과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기본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도 있다. 연극 '햄릿'은 배우진 뿐만이 아니라 연출 손진책, 무대 디자이너 박동우, 프로듀서 박명성 등 스태프도 모두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다. '햄릿'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지 않고 철저히 고전 원작에 충실히 맞춘 셈이다.

자연스럽게 중장년층에게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욕구를 자극한다는 것. 정덕현 평론가는 "'디지털'(영상)은 복제 가능하다.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지만 연극은 그렇지 않다"며 "('햄릿'의 흥행은) 아날로그에 대한 욕구의 연장선에 있다"고 분석했다.

윤석진 교수는 "'햄릿'의 유명세와 더불어 같이 나이 들어가는 배우들에 대한 동질감, 동시대성을 느낄 것"이라며 "나이 들어가며 잃어버렸던 젊은 날의 감성을 회복하고 싶은 요구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극 '햄릿' 제작사는 현재 내부적으로 공연 회차를 추가하는 문제를 고민 중이다.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매진이 너무 빨리 돼서 앙코르 공연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배우들 일정 등의 문제로 논의와 조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