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잡 킬러'냐 '잡 메이커'냐…'알파고 세대'에 묻다

(왼쪽부터)권혁희(19·용인외대부고 졸, 美 세인트존스대학 입학 예정), 조청호(18·용인외대부고 3학년), 한선화(58·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김태환(19·용인외대부고 졸, 美 벅넬대학 입학 예정)/사진=KISTI<br> <br> <br>

AI(인공지능)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AI와 로봇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잡 킬러’가 될지 아니면 공생하며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잡 메이커’가 될지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현 직업지형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머니투데이는 이른바 ‘알파고(구글 AI) 세대’들에게 앞으로 AI가 몰고 올 충격의 본질은 무엇일지, 그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물었다. 좌담회에 참석한 김태환·권혁희·조청호군 등 3명의 학생은 바쁜 수험생활 속에서 틈틈이 AI에 대한 책(만들어진 생각: 고등학생들이 생각하는 미래 인공지능의 발전방향)을 공동저자로 펴내 주목을 받았다.


김 군은 2014년 제1저자로 AI 논문(러프집합 이론과 결정테이블을 이용한 인공신경망 규칙기반 방법)을 홍콩에서 열린 기계설계 관련 국제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바 있다. 조청호 군은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열린 ‘콘래드 혁신 정신 챌린지 대회’에서 수압·원심력만으로 배설물을 처리하는 ‘무동력 우주변기’를 제안, 항공우주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권혁희 양은 한국철학올림피아드 장려상을 수상했다. 앳된 얼굴의 이들이 AI 관련 컴퓨터 기술 개발의 중추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한선화 원장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참석자]
김태환(19·용인외대부고 졸, 美 벅넬대학 입학 예정)
권혁희(19·용인외대부고 졸, 美 세인트존스대학 입학 예정)
조청호(18·용인외대부고 3학년)
한선화(58·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사람인 척’하고 쓴 소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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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희 양/사진=KISTI

평소 생각해온 AI는.


▶(권)철학과 문학, 사회학을 좋아하는 데 AI는 굉장히 철학적인 베이스가 많이 요구된다는 것을 책을 쓰면서 알게 됐죠. AI는 모든 학문을 통합시킬 수 있는 연구분야라고 생각해요.

▶(조)제 꿈은 ‘인간과 같은 AI’를 만드는 겁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단지 모방하는 정도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컴퓨터 공학보단 더 기초가 되는 수학을 대학에서 전공하고 싶어요.

-AI시대 인간의 일자리는 어떻게 될까.

▶(김)‘지식’ 위주인 4차 산업혁명은 ‘노동’ 중심인 3차 때와는 다를 거예요. 인간이 유일하게 우위를 차지해온 분야를 AI에게 따라잡히면서 인간과 같은 AI가 나와 인간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란 얘기에 대해 일부분은 수긍하지만, 컴퓨터가 복제할 수 없는 이성과 감정 등 ‘인간성’을 강조한 직업들은 끝까지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해요.

▶(권)앞으로 인류는 컴퓨터가 쉽게 따라잡지 못할 창의성 등을 탐구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대 창의는 우리가 생각하는것만큼 순수한 인간의 영역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마전 AI가 쓴 소설을 읽으면서 했어요. ‘먹구름이 짙게 낀 날이었다’는 식으로 마치 자신이 AI임을 망각하고 쓴 것 같았죠. AI가 느낀 감정을 진솔한 표현법으로 담았어요. ‘사람인 척’하고 쓴 게 아닌 것 같았죠. 이세돌 9단에게 불계패를 안긴 알파고도 그 수를 보면 모방만 한 것은 아니었잖아요. 바둑계가 이제껏 본적 없는 전략을 구사했죠. 창의가 어쩌면 인간만의 영역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태환 군/사진=KISTI

▶(조)기계가 인간과 동일한 기능을 갖고, 사람과 똑같이 행동한다 할지라도 그(소설을 쓴 AI)가 기계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턴 그 소설을 왠지 읽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서사가 없으니까요.

▶(권)우리는 미래에 과연 AI가 쓴 소설을 읽고싶어할까, 저도 고민해 봤어요. 진짜 재미있지 않은 이상 독자들은 사람 작가가 쓴 것을 더 원할지도 몰라요. 가치부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이슈라고 생각해요.

▶(조)영국 산업혁명 시대엔 기계가 일자리를 뺏는다는 이유로 기계파괴운동인 러다이트‘(Luddites)도 있었잖아요. 하지만 되돌아보면 항상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 후 사람들은 더 많은 일을 해 왔어요. 기술이 사람의 역할을 대처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직업을 만들고, 경제적인 부를 창출해 왔죠. 경제는 우리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어디에 지불하겠다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예요. 기준이 ’우리‘라는 단어에 맞춰져 있다는 말입니다. AI가 인간과 동등한 능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인류는 AI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한)저도 사람을 기준에 놓고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 분이 쓴 책에서 재미있게 본 내용이 있어요. 포드자동차 회사 직원이 공장을 견학온 사람들에게 로봇 자동화 공정을 보여주면서 ‘이제 사람이 필요없는 시대가 왔습니다’라고 말하니 어떤 사람이 ‘그러면 자동차는 누구에게 팔죠’라는 부분이요.

AI를 어느 수준까지 만들지 결정하는 주도권을 인간이 쥘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보다 더 똑똑한 AI가 나오면 그 주도권은 계속 사람이 갖도록 할 것인가의 문제는 지금부터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도권을 인간이 계속 쥐고 있다면, 미래의 직업구도가 어떻게 바뀌든 간에 사람을 위한 일자리는 분명 계속 만들어 질 겁니다. 일자리가 3년 이내 몇 개가 사라진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계속 생겨날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뭘까요. 먼저 미래를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조청호 군/사진=KISTI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앞으로 교육현장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나.

▶(조)수학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지적호기심 수준이 높았어요. 하지만 시험과 별개로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처지잖아요. 이를테면 화학에선 화학결합식만 가르치면 되는 데 화학결합의 본질적인 의미를 슈뢰딩거 방정식과 미분 방정식과 연관시켜 설명하라는 식의 문제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죠. 시험은 기술이라고 하잖아요. 수능 모의고사를 분기 별로 한 번씩 치르는 것도 상당히 기술적인 부분이 많아서일 거예요. 이런 기능적인 부분은 우리보단 AI가 압도적으로 더 잘 하죠. 우리는 아인슈타인을 알고 있다가 아니라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는 게 필요해요.

▶(김)대부분의 물리 수업은 식자체를 통째로 암기하라고 시키잖아요. 하지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난 물리 선생님은 그 식이 어떤 의미로 만들어졌는지를 상세히 설명해 줬어요. 물리 공식의 이해는 끊임없는 정의라고 할 수 있죠. A라는 정의를 이해하기 위해선 앞선 정의를, 또 그 정의를 정리하기 위해선 그 전의 정의를 알아야만 해요. 하지만 저는 그 물리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저 정의를 달달 외우기만 했죠. 선생님 입장에선 진도를 빨리 나가야 하니까 정의를 설명할 시간적 여유가 아마 없으셨을 거예요. 저는 AI와 사람의 다른 점은 ‘생각하는 힘’에 있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선 제도권 교육에서 학생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마련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선화 KISTI 원장/사진=KISTI

▶(권)학교 현장만 바꾸려는 노력만으로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저에 대해서 탐구를 많이 했어요.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 같았다고 할까요. 어렸을 때 어떤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지 등을 늘상 나 자신과 얘기하고 관찰하죠. 교육제도에서 얻지 못한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어요.

제가 학교에 요청하고 싶은 것은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여유를 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현실은 매일매일 숙제에 시달리죠. 시험범위도 너무 넓구요. 간혹 쏟아지는 과제를 혼자서 해내기가 버거울 때가 많죠. 마음에 여유를 갖고 싶은 데 그게 그리 쉽지 않아요.

▶(한)얼마 전 TV다큐에서 시골에 있는 독거노인들이 ‘돌보미 로봇’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봤어요. 로봇이 계속 말을 거는 데 처음엔 할머니가 익숙치 않아서 피하죠. 부자연스럽고 나누는 대화도 유치원생 수준인 데 2~3일 후 부턴 할머니가 로봇에게 말을 걸기 시작해요. 제작진이 로봇을 회수해 갈 땐 할머니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죠. 그 모습이 너무 인상깊게 다가왔어요. 가치가 있다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나 고가의 물건만이 아닐 겁니다.

제가 일자리 얘기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왜 하냐면 AI는 앞으로 사람이 하는 전문적인 일을 대처할 거예요. 그렇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을까라고 생각할 때 또다른 출구가 보인다는 겁니다. AI는 변호사보다 훨씬 더 많은 법률적 판례를 학습하고 기억할 수 있어요. 하지만 상담을 하러 온 사람에겐 그게 전부가 아닐 겁니다. 속상한 일은 같이 억울해 해주고, 감정적으로 공감대를 만드는 것. 그것이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가치 아닐까요. 그것을 잘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래 일자리, 그건 이런 가치를 어떻게 교육·훈련하고, 그래서 잃지 않고 가지고 갈 것인가를 서로 얘기할 때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