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보험,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결단

'빅3’ 생명보험사 중 하나인 교보생명이 지난 27일 이사회 내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열었다. 통상 연초 열리는 리스크위원회가 7월에 개최된 것은 이례적이다. 교보생명은 이날 자산 듀레이션을 올 연말까지 6년 초반에서 7년 안팎으로 늘리는 결정을 내렸다. 투자자산의 잔존만기를 1년 더 늘리면 '빅3' 보험사는 연간 수천억원의 운용자산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자산운용 전략도 180도 바뀐다.

◇수천억 이익 포기한 신창재 회장의 결단=오는 2020년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을 앞두고 생보사들의 듀레이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듀레이션은 보험사 자산·부채관리(ALM)의 핵심으로 시장 금리가 변할 때 자산과 부채 가치가 얼마나 변하는지 나타내는 민감도 지표다. 흔히 잔존만기로도 통용된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각 생보사에 부채 듀레이션 최장 만기를 2018년까지 단계적으로 30년으로 늘릴 것을 주문했다. 지금은 종신보험 등 만기가 수십년인 상품을 팔아도 감독규정상 부채 만기를 20년 이내로 표기하지만 앞으로는 30년으로 늘려야 한다.

IFRS4 2단계 도입을 앞두고 보험상품의 실제 만기와 감독규정상 부채 만기의 괴리를 줄이기 위한 차원이지만 생보업계에선 벌써 ‘곡’ 소리가 난다. 부채 만기를 30년으로 늘리면 자산 만기도 이에 따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부채 듀레이션이 늘었는데 자산 듀레이션을 그대로 두면 금리위험액이 늘어 보험사 지급여력비율(RBC)이 급락한다.

삼성생명의 자산 듀레이션은 지난 3월말 기준 6.4년이고 교보생명은 6.2년, 한화생명은 5.7년이다. 감독규정이 변경되면 생보사들은 2018년까지 자산 듀레이션을 평균 10년 안팎으로 맞춰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자산 듀레이션을 현재의 6년에서 8년으로 2년만 늘려도 생보사의 자산운용 수익률은 연 4%대에서 3.6%로 0.4%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추산된다. 이 정도 수익률 하락이면 생보업계가 연간 2조3400억원에 달하는 자산운용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빅3’ 생보사는 자산운용 이익이 1조3100억원이 급감한다.


생보업계에서 처음으로 듀레이션 전략을 대폭 수정한 교보생명은 앞으로 소매 대출영업을 줄여야 한다. 단기 대출을 포기하고 수십년 만기의 장기채 투자 중심으로 운용전략을 180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같은 과감한 전략 수정은 오너 경영인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라 가능하다”며 “임기가 2~3년에 불과한 월급쟁이 보험사 사장들로선 당장 순이익을 포기하고 장기전략을 세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현주의 해법 "해외채 한도 풀어줘야"=보험사들이 자산 만기를 늘리려 해도 국내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데다 해외로 눈을 돌려도 보험업법상 투자한도 규제에 발이 묶인다는 점은 문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산 듀레이션을 늘리려면 장기 채권을 사야 하는데 국내엔 20년 만기 국채가 한 달에 1조5000억원밖에 나오지 않아 연기금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보험사들이 지난해부터 미국 국채를 ‘닥치는 대로’ 사들이는 이유도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미국 국채는 국내 채권보다 만기가 길고 장기채는 오히려 국내 채권보다 금리가 높은 경우도 많다. 이에따라 지난 1분기에 보험사 해외투자 규모는 494억달러(56조4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0.9% 급증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현행 보험업법에서는 외화표시 자산 투자한도를 총자산의 30% 이내로 묶어 놓고 있다. 미래에셋생명은 지난해 말에 이미 해외자산이 전체의 22%대로 치솟았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금융당국에 해외자산 투자한도를 풀어달라고 요청한 이유다. 금융위원회도 회계기준과 감독규정 변화 등에 따라 해외자산 투자한도 규제를 없애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이 오는 9월 국회의 ‘문턱’을 넘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