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김정주의 빛과 그늘, '넥슨월드'의 꿈은…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대표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김 대표는 대학동창 진경준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게 각종 특혜를 주고 여러 사건을 무마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저는 사적 관계 속에서 공적인 최소한의 룰을 망각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NXC 대표)가 결국 고개를 떨궜다.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29일 그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상장사인 넥슨재팬 등기이사직을 내놨다. 불명예 퇴장하는 그를 보는 게임업계 관계자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특임검사팀 수사결과, 뇌물의 대가성 등 위법성은 발견되진 않았으나 ‘잘못된 만남과 거래’ 자체로 그는 사과문대로 "법의 판단과 상관없이 평생 잘못을 짊어지고" 살게 됐다.

◆신화이길 거부한 ‘게임보이’, 창업자 김정주의 빛과 그림자=94년 26세의 청년 김정주는 역삼역 4번 출구 앞 성지하이츠II 2009호에서 송재경 현 XL게임즈 대표, 아내인 유정현 NXC 감사와 마주 앉아 전설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다. 공전의 히트작들을 거치며 국내 기업 최초로 일본증시에 상장했고 전방위적인 인수·합병과 투자로 포브스 선정 한국 부자 6위(포브스 선정)에 오르기도 했다.

김 대표 산하의 넥슨은 부분 유료화라는 게임 비즈니스 모델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라이브 개발을 통해 온라인 게임의 현금창출 능력을 극대화했다. 얄미울 정도로 돈 버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한국 게임업계의 상징적 인물이지만 대외 활동과 언론에 나서는 일이 드물어 ‘은둔의 경영자’로도 불렸다.

그는 창업자 1인의 카리스마나 개인기보다 EA나 닌텐도처럼 조직력에 기반한 기업을 만들고 싶어했다. 낯을 가려서가 아니라 ‘김정주가 필요없는 넥슨’을 꿈꿨기 때문이다. 그는 일찌감치 전문경영인을 두고, 개발자들과 협의해 주요의사를 결정해왔다. 실제 넥슨 일본과 한국 법인은 각각 EA 부사장 출신의 오웬 마호니, 박지원 대표 등 전문경영인이 맡고 있다.


김 대표는 창업시절부터 인적 네트워크를 중시했다. 콘텐츠기업의 특성상 사람이 곧 자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폭넓은 인맥이 김 대표에겐 부메랑이 됐다. 판사 출신의 부친의 영향이었을까. 유독 법조 인맥과 친분이 두터웠고, 미국 변호사 출신의 데이비드 리를 일본대표로 전격 영입하기도 했다. 이 인맥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때 요긴하기도 했다. ‘규제’ 대상인 게임산업의 특성상 일종의 ‘보험’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김정주 없는 넥슨, 신뢰회복 급선무 =하지만 진 검사장과는 ‘넘지 말아야 선’을 넘고 말았다. 회사주식이 무상으로 오갔고 가족여행 경비에 렌탈차량까지 부당하게 지원했다. 1인 지배체제의 폐해를 우려해왔던 김정주 대표지만 이 과정에서 내부 감시의 눈은 작용하지 않았다. 일본에 상장한 후 넥슨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국내 자본시장의 감시도 그만큼 느슨해졌다.

김 대표가 해외 인맥쌓기와 미래 신규투자에 집중하는 사이 넥슨은 외부와의 ‘책임있는’ 소통창구도 막혔다. 전문경영인이 각각 한국, 일본으로 책임 권역이 나뉜 채 게임개발 및 내부관리에만 주력하다 보니 넥슨 전 사업장과 지주회사 NXC까지 아울러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기 못했던 것.

공교롭게 이날 넥슨은 올 최대 기대작으로 내놨던 대작 게임 ‘서든어택2’을 출시 23일 만에 종료키로 결정했다. 여성 캐릭터 선정성 논란과 초반 흥행몰이에 실패하자 게임을 접기로 한 것. 내우외환이다. 특히 창업주의 검찰기소로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주사인 NXC와 해외 투자법인을 통한 투자 활동도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는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로 넥슨이 공들여온 사회공헌 사업들의 진정성이 폄훼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돈슨’이란 악명을 가진 넥슨이지만 제주도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쾌척한 금액만 350억원에 달한다.

김정주 대표가 꿈꾼 넥슨은 한국의 디즈니였다. 김정주의 넥슨월드는 미완으로 끝나는 모양새다. 디즈니를 넘어선 넥슨의 꿈은 '김정주 키즈'들의 숙제로 남았다. 이제 넥슨은 김정주의 그늘을 지워야 한다. 김정주 없는 넥슨이 제대로 굴러갈 때 역으로 창업주가 뿌려놓은 창의적 문화만은 틀리지 않았음이 입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