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 청탁 관행, 어디까지 처벌받나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장에 자리하고 있다. 헌재는 이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제2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에 합헌 판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김영란법은 두달 뒤인 9월28일 원안대로 시행될 전망이다. /사진=뉴스1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9월28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사립학교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던 여러가지 접대·청탁 관행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대학원생이 논문 심사 교수에게 직접 체류비를 따로 챙겨주거나 사립학교 교원이 재단 인사들에게 돈을 상납하는 행위 등 크고 작은 청탁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9일 교육계에서는 김영란법에 대한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이미 교원은 관련 법령으로 금품·향응수수 징계 시 승진이 제한되는만큼 김영란법은 과잉입법"이라는 반대 논리와 "사립학교 교직원 역시 공립학교와 똑같은 청렴도를 요구받아야 한다"는 찬성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중 처벌 논란이 되는 것은 학부모가 교사에게 주는 촌지 문제다. 이미 기존 법이 규정하는 처벌의 무게도 엄중하기 때문이다. 교육청에 따라서는 10만원 이상의 금품·향응수수를 받으면 배제징계(해임 또는 파면) 처분을 시행하는 등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는 곳도 있다. 다수의 사립 중고교사들 역시 "학부모에게 돈이나 선물을 받는 관행은 거의 사라졌으므로 법이 시행되더라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 이번 법의 범위가 '사립학교와 직접 계약을 맺은 사람'까지 포함하므로 기간제 교사나 계약직 직원 역시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법인과 직접 계약서를 쓴 이들은 모두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다"며 "기간제 교사, 영양사 등도 여기에 해당하는 반면 제3자가 계약을 체결한 용역업자는 제외된다"고 말했다.

대학의 경우 교수가 대학원생으로부터 관행적으로 받아오던 논문 심사비가 문제될 수 있다. 석사, 박사과정에 있는 대학원생들은 논문 심사 시 반드시 외부 심사위원 교수를 1~2명 초빙해야 하는데 이들이 심사기간에 쓰는 체류비, 식사비 등을 대학원생이 보조하는 관행이 남은 곳이 많다. 한 지방 사립대 교수는 "논문 심사가 3~5차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그때마다 드는 돈이 적어도 50만원 가량이라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며 "돌아가신 교수 중에는 아예 술집에서 논문심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직장인이 진학하는 전문대학원의 경우 교수 참석 만찬 등 대부분 행사 비용을 학생들 지갑에서 차출한다. 10여년 전 모 지방 국립대학의 MBA(경영전문대학원)를 다니면서 원우회장을 맡았던 A씨(60)는 "교수가 저녁자리에 참석하는 경우 나 같은 역대 원우회장이 식사값으로 월 200만~300만원을 지출하는 관행이 있었다"며 "사회생활을 병행하며 공부를 잘하긴 쉽지 않았던 터라 다들 그 정도의 식사나 향응은 교수에게 제공해야 무사히 졸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교법인이 교원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일도 근절돼야 할 청탁으로 꼽힌다. 지방 사립고등학교 전직 교원인 B씨(34)는 "채용된 지 몇달 뒤 갑자기 부장교사가 '설립자 생일에 인사를 가야하는데 설립자가 요즘 재정적으로 힘들다'며 넌지시 현금 상납을 권유해 200만~300만원에 달하는 현금을 드렸다"며 "몇달 뒤에는 '행정실장에게도 명절 인사를 해야한다'며 뇌물을 요구하길래 참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 해외에서 교사와 전혀 관계없는 직업 훈련을 받고 있다.

한편 발전기금 기부자 등 사립학교 교직원이나 재단이 민간인에게 제공하는 식사나 향응은 김영란법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김영란법을 적용받는 대상은 공직자나 공직자에 준하는 기관에서 근무하는 이들에 한한다"며 "예를 들어 발전기금을 낸 민간인을 대상으로 학교가 감사의 표시로 밥을 사거나 행사를 여는 것은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