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연구단은 출연연 운영한계 해결할 키"

“인건비만 축내고 노는 연구자는 아예 발 못 붙이죠. 미션에 맞는 전문가를 엄선해서 뽑죠. 또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과 역할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럴 틈이 없어요. 어쩌면 융합연구단은 지금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운영 시스템의 한계를 해결할 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28일 대전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연)에서 만난 박용기 CCP(화학공정) 융합연구단장(화학연 책임연구원)은 2년 간 연구단을 이끌며 느낀 소회를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융합연구단은 다양한 연구기관·기업의 연구원들이 한 곳에 모여 국가·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 혹은 신산업을 창출하는 미래 성장 기술을 개발하는 ‘집단·대형·장기연구’ 프로젝트이다. R&D(연구·개발)비는 연 100억원, 지원기간은 총 6년(3년+3년)이므로 성과가 큰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

박용기 CCP(화학공정) 융합연구단장(화학연 책임연구원)/사진=류준영

박용기 단장팀은 미래창조과학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2014년에 출범시킨 제1호 융합연구단이다. 화학연·에너지연·기계연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서울대 등 8개 대학, SK가스 등 기업연구소에서 선발된 연구원 70여명이 화학연 연구소에 모여 새로운 화학공정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박 단장은 “국내외 어디에도 융합연구단이란 모델이 없다 보니 초기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효율적인 연구단 운영을 위해 적어도 100번 이상 회의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R&D 현장을 지켜온 박 단장은 융합연구단이 선진국처럼 체계적인 시스템 연구로 진화하는 과정의 중간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15년 넘게 운영중인 PBS(연구용역) 제도 아래에선 출연연 연구자들은 서로 적이지 보완자 역할은 아니였어요. 경쟁이란 요소를 부여하려 한 당초의 취지가 변질된 거죠. 이 때문에 협동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전혀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많은 분야에서 융합을 요구하는 기술을 필요로 하면서 혼자서 뚝딱하는 연구가 좋은 아웃풋(성과)을 내기란 사실상 힘들어졌어요. 대형 융합사업단 등이 나오면서 서로 힘을 합쳐야만 하는 집단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융합연구단이란 조직이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이 같은 연구 형태나 패턴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견을 다는 연구자는 없을 겁니다.”

박 단장은 CCP 융합연구단을 한국 R&D계 ‘롤모델’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6년간의 연구단 운영을 통해 융합연구의 효율성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의 성과로 얘기하면 모두가 따라올 겁니다.”

박 단장은 출연연(25곳)이 지나치게 세분화돼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며 융합연구 활성화를 위해 기관을 하나로 통폐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연구원에서 만약 기계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합시다. 그러면 기계연쪽에 연구자를 파견해 달라고 부탁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현실은 새로 사람을 뽑아요. 만일 출연연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면, 다시 말해 하드웨어(기관)간의 장벽이 없다면 굉장히 유연한 전문 인력풀을 확보하고 운영할 수 있어요. 지금 그게 안 되니까 융합연구단이란 틀로 묶어놓은 겁니다. 출연연을 하나로 통합 운영하면 정말 많은 융합연구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