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린다'로 한발짝 자란 배우 정선아 "다른 사람 생각하는 깊이 생겼죠"

배우 정선아는 뮤지컬 '위키드'의 '글린다'로 국내 최다 공연 기록을 세웠다. '정린다'라고 불릴만큼 글린다 역에 가장 어울린다는 평을 듣는 그는 "글린다의 모습과 제 인생이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사진제공=씨제스

"글린다가 변해가는 과정들이 제가 뮤지컬 배우 생활 15년 정도 하면서 성장통을 겪고 계속 변해 오던 시간 같아요. 이입이 많이 되다 보니 이 캐릭터와의 사랑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어요."


뮤지컬 '위키드'의 '글린다'로 170회가 넘는 무대에 선 배우 정선아(32). 국내 초연 때부터 '원작을 뛰어넘는 글린다'라는 호평을 받으며 국내 최다 공연 기록을 세웠다.

'글린다'는 철없고 자기중심적이지만 친구 '엘파바'와의 우정을 통해 성숙해지는 인물이다. 정선아가 유독 글린다 캐릭터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이다.

"자신만 생각하던 글린다가 오즈(Oz)민들을 점차 생각하는 모습으로 바뀌잖아요. 저도 처음엔 저 하나만 보고 노래를 불렀다면 이제는 함께 하는 동료, 스태프들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깊이가 생겼죠."

정선아는 2002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뮤지컬 무대에 처음 데뷔했다. 아직 30대 초반이지만 어느새 15년 차다. 이제는 어떤 무대에 서도 자신감이 생길 법하지만 오히려 몸을 더욱 낮추는 법을 배웠다.


"왜 예전엔 제가 크다고 생각했을까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무대 위에서 작은 존재라는 것, 무대가 무섭다는 것이 실감이 나요."

그가 '위키드' 2막 1장의 노래 '감사해'(Thank Goodness)를 유독 아끼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오즈 사람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며 노래한다. 자신을 롤모델로 삼는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늘어난 책임감도 이 노래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고 했다.

"꿈을 이룬다는 건 예상보다는 단순하진 않았네요/치를 대가가 있고 또 포기할 것이 있고 또 힘든 시련도 견뎌내야죠/다 지나왔지만/꿈을 이룬 기쁨 생각보다는 덜해도 뭐/완벽한 해피엔딩/엄청난 환호 속에 난" ('감사해' 中)

그는 "초연 때는 고음에만 신경썼다면 이제는 가사 하나하나가 와 닿아서 눈물이 난다"며 "뮤지컬 인생을 겪어오면서 느꼈던 모든 것들이 축약돼있는 것 같아 매 회 마음이 울컥한다"고 털어놨다.

'위키드'의 글린다가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인물로 변해가듯, 정선아도 "이제는 함께 공연하는 동료와 스태프들을 생각하는 여유가 생겼다"고 전했다. /사진제공=씨제스

여전히 통통 튀는 매력을 지닌, '발랄하다'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지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는 원숙함이 묻어났다.

"지금껏 받은 사랑의 감사함을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 같아요. 저의 약함을 인정하고 함께해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그냥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덜컥 들어요. 모든 것은 감사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글린다'로 무대에 서는 횟수가 늘어난 만큼 내면도 부쩍 자란 그의 모습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