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개막했어요?"…올림픽에 무관심한 청춘들

펜싱 박상영 선수(사진 오른쪽, 뉴스1)가 금메달을 딴 지난 10일 서울 노량진 P고시학원 앞에는 강의실에 들어가기 위한 수험생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진=조현준 기자

"올림픽 개막했어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시작한지 1주일이 됐지만 올림픽 열기가 청년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진 못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P고시학원 앞에서 만난 행정고시생 박모씨(25)는 "2차 시험이 끝나 다소 여유롭지만 올림픽을 챙겨볼 만큼은 아니다"며 "고시원엔 TV도 없고 휴대폰도 두고 다녀 영상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날 학원 앞은 폭염 속에서도 수업을 기다리는 수험생들로 긴줄이 늘어져 있었다. 로비 테이블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대화가 한창이었지만 남자 펜싱 박상영 선수의 깜짝 금메달로 잔치 분위기인 사회 분위기와 다르게 이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시험 얘기가 전부였다.


3년째 취업준비 중인 서모씨(27)는 올림픽을 보냐는 질문에 "엊그제만해도 개막한 줄도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집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챙겨보셔서 올림픽 중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취직이 안돼 힘들다. 아침마다 도서관 가서 공부해야 하는데 그런 거 볼 틈이 어디있냐"고 말했다.

학원가 앞 고시식당 TV에서는 한국 양궁선수가 선전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지만 늦은 저녁을 먹는 수험생들은 화면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각자 가져온 노트와 휴대폰만 바라봤다. 음식을 기다리며 단어장에 쉴 새 없이 밑줄을 긋는 학생도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대학생 최모씨(25)는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학생 때보다 관심이 줄어든 게 사실"이라며 "지금은 내년 4월에 있을 시험 생각뿐이다"고 했다. 최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올해 노량진에 입성했다.

노량진의 한 공무원 고시학원에서 취업준비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자료사진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 청년들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광고회사 인턴인 조모씨(23)는 "학교 다닐 때는 새벽 5~6시까지 축구 챙겨보는 게 예사였는데 일 시작하니까 1분이라도 더 자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인턴들도 다 안보는 거 같다"며 "당장 정규직이 될지 말지 발등에 불이 붙었는데 한국 응원할 겨를이 없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조씨가 다니는 회사는 인턴 성적으로 정규 사원을 발탁한다.

올림픽 자체에 몰입도가 낮아졌다는 반응도 있다. 영상업계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모씨(29)는 "물론 우리나라 선수가 잘하면 좋지만 옛날처럼 죽자살자 응원하는 만큼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씨는 "금메달은 선수 개인의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따지고보면 나하고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며 공허감을 내비쳤다.

이씨는 "그래도 경기 결과는 꼭 챙겨본다"며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척박한 토양에서 성공하는 게 멋져 응원하게 된다. 대리만족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안모씨(24)는 예전같지 않은 응원 문화의 원인을 양극화에서 찾기도 했다. 안씨는 "2002년 월드컵 때는 다른 사람이랑 함께 응원하는 문화에서 흥분도 되고 동질감도 느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계급이 나를 비롯한 사람 관계를 갈라놓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응원으로 동질감을 느끼기엔 (타인과의) 골이 깊어졌다고 생각한다"며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