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웃음을 유발하는 사건과 정황의 정밀묘사

들깨를 터는 저녁


구장네 아줌마 둘이서 머리끄덩이를 잡고
들깨를 턴 포장에서 뒹굴었다
서로의 어깨를 잡고 흐느껴 울었다
누레진 들깨 토매를 털듯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뒷산의 멧비둘기가 시원하게 속을 긁었다
벌써부터 구장의 프라이드 베타가
산모롱이에 정차해 있었다

아줌마 둘이서 바람을 등지고
들깨를 까부르는 소리 키로 쏟아졌다
티끌 하나 없이 흡혈하는 하늘
들깨를 턴 냄새가 스며들었다

시적 상황이나 사물을 세밀화 그리듯 묘사하는 이윤학의 시를 읽으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구장네는 마누라가 둘인가 보다. 요즘은 그런 경우를 찾아보기가 힘들지만, 한 세대 전만해도 작은마누라와 큰마누라가 같이 살던 집이 종종 있었다. 사는 게 그렇듯 두 마누라는 잘 지내다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기도 하고 다시 화해하기도 한다. 사는 게 같은 처지니 서로 어깨를 잡고 흐느껴 울면서 위로하기도 한다. 구장도 말릴 방법이 없어 싸움이 그치기를 멀리서 쳐다볼 뿐이다. 어쩌다가 마누라가 둘이 됐는지는 모르겠다며, 자신의 과거를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다른 시들도 마찬가지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시집 『짙은 백야』를 최근에 출간한 이윤학 시인은 196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간 9권 째 시집을 냈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서대마을에서 쓴 시는 정밀한 묘사의 전범을 보여주는 한 편의 시골 풍경화다.


백년을 넘긴 대추나무가
서쪽으로 기우는 달밤입니다
수평으로 퍼지다 직각으로 올라간
얼마 되지 않는 대추나무 가지에도
이른 메밀꽃처럼 꽃이 핀 달밤입니다
훤히 뚫린 개집 안 더 아픈 강아지가
끈질기게 앓는 강아지의 등에 바짝 붙어
흰 털을 핥으며 실눈을 빗뜨는 달밤입니다
- 「서대마을에서」 전문

백년 넘게 오래된 대추나무가 꽃을 피우고 대추나무 아래 아픈 강아지들이 서로 등을 대고 있는 달밤의 정경이다. 그림 한 폭이면서 현재 시골을 은유한다. 시 「늦봄」이라는 시는 화자가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고 외출을 한 사이에 꿩이 카펫 움푹한 자리에 새끼 꿩 세 마리를 들여놓고 종적을 감춘 사건을 쓴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사건으로 시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반지하방에서 찜통에 사골을 끓여놓고 아이들을 거둘 수 없어서 집을 나간 어미와 어미를 찾는 아이들의 울음을 교차시킨다. 꿩의 사건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면서 인간사를 비유한 것이다.
시 「장독 깨지다」는 한편의 민중 개그다. 기미 낀 마누라를 위해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가물치를 가져가면서, 자신의 수탉을 가물치가 있던 장독에 넣어놓고 갔는데, 수탉이 몸부림을 쳐서 장독이 경사로 구르면서 깨지는 이야기다. 이 시집을 읽어가면서 웃음을 참지 못할 것이다.

◇짙은 백야=이윤학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28쪽/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