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스'·'함부로 애틋하게'…'KS마크' 달고 해외 질주

시청률 20%를 상회하며 동 시간대 전국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SBS 드라마 ‘닥터스’는 톱스타들의 열연과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로 호평받고 있다. 천재 소녀 옥녀의 모험을 그린 사극 MBC ‘옥중화’ 역시 20%의 높은 시청률로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평범한 듯 독특한 로맨스를 그린 KBS ‘함부로 애틋하게’는 국내보다 중국에서 단숨에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중국 ‘유쿠’ 사이트에선 방송 1주일 만에 40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각 지상파 방송에서 ‘안 보면 안 되는’ 킬러 콘텐츠로 기억되는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추진하는 ‘방송영상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을 통해 탄생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1년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2012년 지원작)가 있다. 매회 시청률 20% 안팎을 기록한 이 드라마로 SBS는 100억 원 이상, 제작사 IHQ는 20억 원 안팎의 순수익을 거뒀다. SBS 사극 최초로 터키 및 루마니아 국영 방송사에 판권을 판매하기도 했다.

웹드라마 '간서치열전' 포스터.

제작 지원 사업은 그러나 인기 있는 ‘드라마’에 국한하지 않는다. 의미있지만 소외된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손을 뻗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속속 탄생하는 웹드라마 같은 가능성의 콘텐츠에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네이버 tv캐스트에 먼저 공개된 후 KBS 최초 웹드라마로 선보인 ‘간서치열전’은 웹과 모바일 시대에 맞춘 적절한 지원작이었다.

한콘진은 이 여세를 몰아 올해 처음 지원 사업으로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인터넷 스타들의 콘텐츠를 유통하는 일종의 인터넷 외주제작사)까지 끌어들였다.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영상 콘텐츠의 다양성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방송영상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을 통해 창의적인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굴함으로써 차세대 한류 콘텐츠를 육성하고 제작사의 창작 역량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영상의 모든 것’ 지원하는 다양성에 열린 태도

한콘진이 지원하는 제작 콘텐츠는 흔히 알려진 드라마 시리즈물에 한정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단막극, 웹드라마 등 영상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콘텐츠를 지원한다. ‘벗어날 수 없는 산’처럼 한국, 독일, 네덜란드가 합작한 작품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방송 포맷 분야에선 ‘아이돌 문화해설사 도전 프로젝트’ 같은 새로운 포맷 기획안이나 ‘동네변호사 조들호’ 등 우수 프로그램에 대해 국제 시장에서 활용되는 포맷 제작도 지원한다.

‘황금시대’, ‘사돈끼리’ 등 어르신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실버문화 방송콘텐츠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골드판다다큐멘터리영화제 2관왕에 오른 ‘오랑우탄, 산드라의 이사’ 등 다큐멘터리 작품에 대한 지원은 한콘진이 가장 공들이는 장르 중 하나다.

지난 15년간 398편 지원…“경쟁력 강화와 해외 투자의 마중물 역할”

한콘진의 제작 지원은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됐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라는 이름으로 지원할 때는 독립제작사 등 열악한 기획사의 제작 환경 개선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2009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고 나선 한류 붐을 타고 글로벌 시장에 눈높이를 맞춰 킬러 콘텐츠 발굴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여전히 제작 지원의 본질은 열악한 제작자를 지원하는 것이다.

김희숙 한콘진 방송산업팀 차장은 “이름난 드라마 제작사도 실질적으로 경영지표가 열악한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며 “드라마 제작사를 지원하고 경쟁력을 키우는 측면이 하나 있고, (해외)투자 유치를 위한 마중물이 기관의 두 번째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2년부터 올해까지 한콘진이 제작 지원한 편수는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 총 398편이다. 단막극을 포함한 드라마는 109편, 다큐멘터리는 287편이다. 대중성보다 작품성 중심으로 평가하는데도 지원작의 상용화율은 70.6%에 이를 정도로 높은 수준의 방영률을 확보한다. 지원작의 50% 정도는 사전 제작하기 때문에 쪽대본이나 밤샘촬영 등의 현장의 고질적 문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대중 논리에 사장될 아까운 콘텐츠를 지원함으로써 제작사의 창작 의욕 고취 및 콘텐츠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것이 지원사업의 가장 큰 목표이자 수확이다.

한콘진 이영재 콘텐츠진흥본부 본부장은 “진입 장벽이 어려운 단막극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콘텐츠에 지원이 많은 것은 이를 통해 우수한 신인 작가나 PD들을 새로 발굴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많기 때문”이라며 “더 좋은 한류 콘텐츠를 찾는 시도와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출 400억원 초과달성…킬러콘텐츠 만들어도 예산은 여전히 “초라해”

올해 ‘방송영상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은 목표 수익 250억 원보다 150억 원이 많은 400억 원의 초과 매출 성과를 달성했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일본, 태국에 수출돼 241억 원의 매출을, ‘사임당 더 허스토리’는 일본, 대만, 홍콩 등에 수출돼 101억 원의 매출을 각각 기록했다. 웹드라마 ‘고결한 그대’는 미국, 중국, 일본에 잇따라 방영됐고, 다큐멘터리 ‘바나나꽃이 피었습니다’는 지난해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베스트피칭상을 받기도 했다.

지원금액은 드라마의 경우 평균 총 제작비의 2% 선이고, 다큐멘터리는 50%에 육박한다. 지원작이 국내를 넘어 해외로 수출될 때, 작품은 곧 ‘KS 인증마크’를 다는 것처럼 ‘공증’의 효과를 얻는다. 100~200억 원이 넘는 드라마 한편 제작에 지원금은 최대 2억 원 미만일 뿐이지만, 공공기관의 지원제도로 공신력이라는 값을 매기기 어려운 부가가치를 획득하는 셈이다.

실버문화방송콘텐츠 제작 지원을 받은 프로그램 '우리 할매'.

올해 방송영상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비는 35억 원, 실버문화방송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비는 15억 원이 각각 책정됐다. 한류 콘텐츠가 갈수록 양과 질을 담보하고 있는 시점이지만, 지원 사업비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지원작이 해마다 늘고 다양성 작품이 쏟아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지금 예산보다 10배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송성각 한콘진 원장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앞으로 뉴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지원을 더 많이 늘릴 것”이라며 “그래야 우리가 놓칠 뻔한 좋은 콘텐츠나 제작사의 역량을 키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