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원 왜 극단적 선택했나… 檢 수사관행 도마위에 올라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26일 검찰 소환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경에는 '극단적인 심리적 압박'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평소 꼬장꼬장한 성격에 치밀한 업무 능력, 강한 자존심으로 유명했던 이 부회장이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감과 함께 다가올 모욕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검찰의 전방위적인 롯데그룹 수사에 대한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의지도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회장의 차량에서는 유서 4장도 발견됐다. 자필로 작성된 유서에는 "롯데그룹에 비자금은 없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취지의 유언이 남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43년간 롯데맨으로 일하며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부회장까지 오른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이 '비리 온상'으로 지적받는데 반발해 유서에 '비자금 부재'를 못 박으며 검찰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한 산책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소지품에서 발견된 신분증과 지문조회로 경찰은 이 부회장의 신원을 확인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어제 업무를 마치고 바로 귀가한 것으로 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그럴 분이 아닌데…"라며 당혹해 했다.

하지만 우발적인 선택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자택인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신원이 확인된 경기 양평 서종면까지는 40㎞가 넘는 거리다. 일각에서는 사망 장소가 무인텔(직원체크 없이 들어가는 모텔) 인근 산책로인 점에 비춰 이미 전날 장소로 이동한 뒤 고민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도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졌다. 기독교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죄악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절박한 심정에 놓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 부회장 자살로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에도 일대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그룹 2인자가 목숨을 내놓으면서 '호소'를 하는 마당에 검찰이 수사를 거세게 밀어붙이기 힘들게 됐다. 특히 목숨을 내놓을 만큼 공포감을 안기는 검찰 수사 방식에 대한 비판도 제기될 전망이다.

인격모독이나 가혹행위 등 물리·언어적 폭력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느끼는 압박감과 모욕감은 여전하다는 지적도 많아 수사 방식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는 상태다.

이상민 의원(더불어민주당·대전 유성을)이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는 검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의자가 6년간 79명에 이른다. 연도별로는 △2010년 8명 △2011년 14명 △2012년 10명 △2013년 11명 △2014년 21명 △2015년 상반기 15명이다.

해외 자원개발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당일인 지난해 4월9일 북한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2009년)과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2003년), '정윤회 문건' 을 유출한 의혹을 받은 최모 경위(2014년), '함바 비리' 등으로 수사를 받던 임상규 전 농림부 장관(2011년) 등도 수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조계는 '자백 의존도'가 높은 검찰 수사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다. 명확한 증거보다 자백에 의존하기 위해 모멸감을 주는 수사 방식이 시대에 맞지 않는데도 '악습'에 젖어 관행과 타성으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변호사는 "치밀하게 증거를 수집해 제시하는 수사가 아니라 자백에 손쉽게 처리하려는 검찰의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며 "법원도 자백을 주요증거로 인용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