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자금 1조 한진해운, 자구안은 4천억… 법정관리 유력

한진해운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이 한진해운에 대한 자율협약(채권은행 공동관리)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신규자금을 6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채권단은 자율협약 지속 여부를 30일까지 결정하기로 했으나 '신규자금 지원 불가'라는 기존 원칙에 따라 자율협약을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끝내면 한진해운은 법정관리(기업회생) 신청이 불가피하다.


정용석 산업은행 구조조정부문장(부행장)은 26일 "회계법인 실사 결과 한진해운의 부족자금은 올해와 내년 각각 8000억원, 2000억원으로 1조원이며 최악의 경우 1조30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부족자금은 용선료 협상과 채무재조정이 모두 이뤄진다는 가정으로 산정됐다. 정 부행장은 "한진해운이 지난 25일 제출한 자구안 중에서 실효성 있는 자금은 4000억원 뿐"이라며 "부족자금을 1조원으로 보면 채권단에서 6000억원을 선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진그룹이 지난 25일 산업은행에 제출한 자구안에는 대한항공이 올해 12월과 내년에 각각 2000억원씩 유상증자를 통해 총 4000억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이 담겼다. 추가 부족자금 발생시 한진그룹의 기타 계열사와 조양호 회장 개인의 유상증자를 합쳐 1000억원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는 방안도 포함됐다. 또 대한항공이 보유한 2200억원 규모의 한진해운 영구채를 협약채권과 동일하게 출자전환하고 시애틀터미널 운영사 TTI에 대한 600억원의 주주대출채권을 매각하는 방안도 들어가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자구안 중에서 대한항공 유증만 실효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 부행장은 "1000억원은 대한항공 유증 완료 후 부족자금이 발생하면 지원한다는 예비적 성격으로 실효성이 없다"며 "TTI에 대한 주주대출채권 600억원 매각도 담보 문제 등으로 가능한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자구안이 지난 6월에 받은 자구안에서 진전이 없다는 지적이다.

신규자금 지원액이 최소 6000억원에 달하는 만큼 채권단이 다음달 4일 끝나는 자율협약을 더 연장해주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정 부행장은 "산업은행의 입장은 채권단 회의서 논의해 결정해야 하는 만큼 미리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한진해운에 신규자금 지원은 없다"는 원칙을 거듭 밝혀온 만큼 신규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자율협약은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자율협약 종료를 산업은행 단독으로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협약채권단 중 산업은행의 채권 비중이 60%대로 압도적인 데다 채권단에 포함된 시중은행들도 신규자금 지원에 찬성할 곳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자율협약에 동참 중인 6개 은행은 30일까지 은행별로 자율협약 연장 여부를 결정하며 채권액 기준 75% 이상이 동의해야 자율협약이 연장된다.

한편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신청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컨테이너선사인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해운동맹에서 퇴출되면서 청산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합병 가능성에 대해 정 부행장은 "지금 상황에서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