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400만원' 줄게 교도소 갈래?"…황제노역 논란

모 방송 프로에서 전재용씨와 이창석씨의 '일당 400만원 노역'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JTBC 썰전 캡처

'교도소 밖에서 금수저였던 사람들은 교도소 안에서도 금수저?'


얼마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52)와 처남 이창석씨(65)가 일당 400만원의 노역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대 논란이 일었는데요.(일당 400만원이라니. 웬만한 직장인 월급보다 많은 액수입니다 ㅠ.ㅠ)

보통 '환형유치제'라 함은 벌금이나 과료를 내지 못한 범죄자들이 교도소에서 노역으로 대신하는 제도입니다. 돈이 없어서 벌금을 내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나 극빈층들을 위해 도입된 것이죠. 그런데 왜, 사회적 약자도 아닌, 극빈층도 아닌, 대한민국 상위 1%가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걸까요?

대한민국 엘리트들만이 누릴 수 있다는 '황제노역'은 대체 무엇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샅샅이 파헤쳐봤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52.왼)와 처남 이창석씨(65)./사진=뉴스1

전재용씨와 이창석씨는 2005년 27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각각 집행유예와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습니다.(보통 벌금형은 포탈 금액의 2배 이상 선고됩니다.)


두 사람은 모두 기간 내 벌금을 납부하지 않아 결국 노역장에 유치됐고 전씨는 원주교도소에서 '청소' 노역을, 이씨는 춘천교도소에서 '전열기구 콘센트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논란이 된 것은 바로 두 사람의 '노역 일당'입니다. 노역 일당은 강제 규정 없이 법관 재량으로 결정하는데요. 2014년 당시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400만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동안 노역장에 유치한다'고 선고했습니다.

현행법상 노역 일수는 최장 3년을 넘길 수 없기 때문에 벌금을 일일로 계산을 하니 일당 400만원이 된 것입니다.(형법 제 69조 2항에선 벌금을 내지 않은 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 기간을 노역장에 유치해 작업에 복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액 채무자라도 길어봤자 3년만 노역장에서 몸으로 때우면 벌금을 모두 탕감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황제노역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일당 5억짜리' 기억나시나요? 2014년 법원은 249억원 벌금을 내지 않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일당 5억원의 노역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계산대로라면 허 전 회장은 50일만 노역하고 250억원의 벌금을 탕감받게 되는 겁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이 일었습니다. 결국 허 전 회장에 대한 노역은 4일만에 중단됐고 나머지는 벌금 징수로 집행됐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벌금 1억원 이상~5억원 미만은 300일 이상 △5억원 이상~50억원 미만은 500일 이상 △50억원 이상은 1000일 이상이라는 환형유치 기한의 하한선 규정이 신설되기도 했습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하지만 여전히 법 집행과 국민법감정과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최저임금 6470원. 하루 8시간 동안 일해도 5만1760원, 한달에 20일을 일할 경우 100만원 조금 넘는 금액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황에서 수십억 조세포탈을 한 사람들의 노역 일당이 400만원이라니. 꼬박꼬박 세금내며 일하고 있는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할 만도 합니다.

일반적인 환영유치범의 일당은 얼마일까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인 형사범의 노역 일당은 보통 5만~10만원 수준으로 정해집니다.


그렇다면 하는 일이 다를까요. 상자나 종이백 접기, 작업복 만들기, 목공 등 각 교도소마다 작업은 다르지만 같은 교도소 내 노역자들의 업무나 강도는 비슷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한 사람은 400만원, 다른 사람은 10만원의 일당이 책정되는 것입니다. 법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미납 벌금이 고액일수록 환영유치제가 유리한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 한 온라인 기사에는 "환영유치범에게 무조건 법정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3년안에 다 끝나지 않으면 2년 11개월마다 재계약을 하게 하라"는 댓글이 달렸는데 많은 누리꾼들이 이에 공감했습니다.


논란이 확대되면서 최장 3년인 노역 유치 상한선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회에선 노역장 유치 상한 기간을 3년에서 6년으로 늘리는 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6년으로 늘린다고 황제 노역 논란이 사라질까요. 금액이 줄긴 하겠지만 일반 환영유치범들과는 많은 차이가 날텐데요.

상한선을 무제한으로 올릴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형벌의 무게는 사형>징역>금고>자격상실>자격정지>벌금>구류>과료>몰수 순으로 무겁거든요. 벌금은 징역형보다 더 낮은 형벌입니다. 하지만 노역 유치 상한을 늘리게 되면 사실상 벌금형이 징역형보다 무거운 결과가 돼 형벌 체계상 모순이 생길수도 있다는 겁니다.


김정범 법무법인 민우 변호사는 "벌금을 못내 10~15년을 노역장을 지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본말이 전도되는 식이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벌금이 아닌 징역형을 선고받는 게 낫지 굳이 벌금형을 선고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론상 이해가 안되는 것이 아니지만 역시나 법 집행과 국민 정서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더욱이 이번 황제 노역의 당사자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족이란 점은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입니다. 간극이 좁혀질 때까지 황제 노역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