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한국…애연가 건강 담보로 해외 본사 배당 '수천억'

1970년대엔 양담배를 유통하는 것도, 피우는 것도 불법이었다.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며 미군부대로부터 흘러나온 양담배와 밀수담배가 나돌았다. 정부는 사회기강 확립, 국산담배 보급 등을 이유로 양담배를 강력히 규제했다.


양담배 단속반도 있었다. 당시 전매청(KT&G의 전신) 소속 감시반원들은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자택까 담보로지 단속하는 무시무시한 권력을 행사했다. 신성일, 남진 등 인기 연예인들이 집에서 양담배를 피운 혐의로 3만~10만원의 벌금을 내기도 했다. 자장면 한 그릇 값이 70~80원인 시기로 요즘 자장면 한 그릇이 5000원 선인 점을 고려하면 양담배 한 대 피웠다가 630만원 가량 벌금을 낸 셈이다.

양담배 규제가 풀린 것은 1986년이다. ‘미국 상품 소지와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와 교역할 수 없다’는 미국의 통상압력에 한국 정부는 두 손을 들었다. 수입담배 시장이 개방되면서 필립모리스(1989년), BAT(1990년), JTI(1992년) 등이 국내에 법인을 세우며 본격 영업에 나섰다.

◇한국 흡연자 입맛 잡았다(?)…쑥쑥 크는 수입담배=담배수입 거부 시위가 일어날 정도로 부정적이었던 사회 분위기 탓에 1990년대 초반 시장점유율 4~5% 그쳤던 수입담배가 본격적으로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담배 제조 독점권 폐지 시기와 맞물린다.

2002년 처음으로 20%를 넘은 수입담배는 2007년 30.7%를 기록하며 6년만에 점유율을 10%포인트나 끌어올렸다. 이후 꾸준히 30%후반대를 오르내리던 수입담배 점유율은 2015년 담뱃값 인상 이후 40%대를 넘어섰다. 2015년 상반기 42.3%로 역대 최대 점유율을 기록한 이후 KT&G의 반등으로 올 상반기 40.6%로 줄었다.


업체별로는 '말보로'가 대표담배인 필립모리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1989년 외국계 담배회사중 가장 먼저 국내시장에 진출한 필립모리스는 초기 '던힐'을 앞세운 BAT코리아 매출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했지만 25년 만인 지난해 매출기준 업계 1위자리를 탈환했다. 당기순익도 1918억원을 기록하며 514억원(BAT코리아와 BAT코리아제조 합산 기준)에 그친 BAT코리아와 격차를 4배가까이 벌렸을 정도다.

다만 '메비우스'(옛 마일드세븐)를 앞세운 일본계 담배회사 JTI코리아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 생산기지없이 KT&G 위탁생산으로 버텨왔지만 매출기준 만년 3위에 머무르고 있다. 영업손실도 3년째 이어지면서 본사 배당조차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매출규모는 10년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가격도, 배당도 마음대로…"군납하게 해달라" 소송도 불사=그동안 수입담배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국내 담배관련 규제 덕에 고공성장을 해왔다. 특히 외국인투자기업인 탓에 통상마찰 등을 우려한 정부의 배려도 충분히 누렸다.

덕분에 외국계 담배회사에게 국내 시장은 손쉬운 놀이터였다. 가격부터 스스로 결정해 왔다. 과거 공기업이었던 KT&G의 경우 정부의 입김 탓에 세금인상 등을 제외하곤 가격을 올리지 못했지만 외국계 담배회사들은 임의로 조절해 왔다.

실제로 2011년 BAT코리아와 JTI, 필립모리스코리아 등은 세금인상이 없었음에도 일제히 가격을 올린바 있다. 당시 KT&G는 가격을 동결했다. 지난해 담뱃세 인상으로 담뱃값이 2000원 올랐을 때는 이보다 적게 올리거나 일부 상품의 경우 가격을 낮추기도 했다. BAT코리아는 대표상품의 하나인 '켄트' 가격을 4300원으로 유지하며 애연가의 발목을 잡았지만 담배 수요가 크게 줄지 않자 슬그머니 4500원으로 올려 빈축을 샀다.

외국계 담배회사들은 담배가격 인상에 따른 부당한 재고차익을 거뒀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에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손쉽게 벌어들인 수익은 무조건 본사로 보냈다. 필립모리스의 경우 지난 10년간 본사로 송금한 배당금과 로열티가 1조4816억원에 달한다. BAT코리아와 JTI코리아를 합하면 10년간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해외로 송금한 수익금은 도합 1조7434억원 규모다.

국내시장서 자유롭게 영업하며 막대한 수익을 거둔 외국계 담배회사들은 최근 군납시장과 휴게사 납품까지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군납의 경우 그동안 KT&G가 독점납품해왔는데 외국계 담배회사들은 이를 문제삼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상생보다 이익 우선"…원료구입·고용·기부도 기대 이하 =이처럼 국내시장서 막대한 수익을 거둬온 외국계 담배회사들은 사회공헌이나 지역상생에는 외면하고 있다. 당장 담배의 원료인 담뱃잎을 전량 수입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당초 필립모리스와 BAT는 국내 생산기지를 지으면서 거센 반발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국산 담뱃잎 사용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공장 설립후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국산 담뱃잎 사용율은 0%다.

그나마 지난해 담뱃값 인상 과정에서 재고차익을 부당하게 가져간 혐의를 받고 있는 필립모리스가 2017~2019년 3년간 총 90억원 규모의 국산 담뱃잎 구매를 결정한 것이 유일하다. BAT코리아의 경우 2001년과 2006년 2차례에 걸쳐 한국법인 대표가 국산담뱃잎 구매를 공언했지만 공염불로 그쳤다.

고용창출 효과도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현재 국내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외국계 담배회사들의 국내 고용인원은 총 2000여명에 불과하다. KT&G(4000여명)의 딱 절반 수준이다.

실적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도 수시로 이뤄진다. BAT코리아의 경우 2014년 10월 영업직원 300여명에 대해 희망퇴직을 받은 바 있고, JTI코리아도 같은해 10% 가량 인력을 감축한 바 있다.

연매출의 0.1%도 안되는 쥐꼬리 기부금도 비판대상이다. 외국계 담배회사 3사의 지난 10년간 기부금총액은 54억6000만원으로, 같은기간 총 매출액(14조3755억원)의 0.04%에 불과하다.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따른 주주 배당은 장려할 사항이지만 재투자할 여력조차 남기지 않고 배당을 빼가는 것은 외국인 투자 촉진을 통해 국가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당초의 외자유치 목적과는 전혀맞지 않는 것"이라며 "그동안 국가의 보호틀 안에서 손쉽게 돈을 벌어온 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데도 소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