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주기 금융상품의 필요성과 디폴트옵션

용돈이나 월급을 타서 한 달도 채 안 돼 다 써버리게 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기분 좋은 지출 이후, 한 달 또는 몇 달에 걸쳐서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재화와 서비스를 끊임없이 소비하기 위해 노동이나 자본을 투입해서 얻게 되는 임금이나 이자소득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적자이다. 성장해서 사회에 나가기 전까지 소득활동은 없으면서 소비는 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소득활동이 왕성한 시기에는 결혼도 하고 가족에게든 사회이든 태어나면서부터 빌린 부채도 갚아야 하고 심지어 미래에 발생할 소득까지 예상해 소비를 하기도 한다. 노후은퇴 이후에는 고민이 더 깊어질 것이다. 기력이 쇠하는 속도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기 때문에 소득이 불확실해지고 생을 마감하게 될 날을 알 수 없으니 소비를 어디에다 맞출 건인가.

심지어 향후 저성장저금리 환경에서는 일자리의 부족과 정년 단축으로 소득의 불확실성은 높아지는데 반해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소비기간은 더욱 길어지게 되면서 일생 동안의 소득과 소비를 균형 있게 관리해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 예상된다.

한 개인이 자신의 '생애가계부'를 사회적인 도움 없이 스스로 균형 있게 설계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인데도 생애가계부 수지의 불균형의 대가는 매우 혹독한 것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나마 정부의 연금제도 개혁이라든가 금융권의 생애주기재무설계 서비스 확대 등 노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정부와 금융권이 개인의 생애수지 불균형 문제를 더 이상 개인만의 것으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해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공적 연금제도만으로는 은퇴 이후 소득을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생애주기 재무설계 등의 맞춤형 서비스는 일부의 자산가들만이 누릴 밖에 없어 많은 사람들이 생애가계부를 주먹구구식으로 개인의 감이나 가계의 특수성에 의존해 쓰고 있어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예측가능성이 낮은 삶을 살고 있다.

최근 모 자산운용사가 타겟데이트펀드(TDF, Target Date Fund)라는 생애주기금융상품을 출시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은퇴시점에 다가갈수록 감소하는 노동소득을 고려해 은퇴 이후 부족한 소득을 금융소득이 보완할 수 있도록 설계된 펀드이다.

은퇴시기, 평균수명, 소득대체율, 금리와 같은 경제변수 등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하여 투자자마다 서로 다른 은퇴시점에 맞추어 자산운용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전문가가 써주는 '과학적 생애가계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대다수의 주먹구구식 생애가계부를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더욱 절실하다.

'디폴트옵션'에 관한 이야기다. 디폴트옵션이 연금자산운용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부족한 연금가입자가 연금자산운용에 대한 관심이 소홀한 경우 최소한의 적극적인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사전에 정해진 금융상품에 의무적으로 투자하도록 하는 제도다.

영미권 국가에서 먼저 도입돼 전체 연금자산에서 매우 높은 비율이 이 제도를 통해 정해진 금융상품에 투자되고 있는데 이들 영미권 국가들이 부(asset)에 대한 공공성 인식은 우리나라보다 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국민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을 실현하도록 하는 사회의 책임의식에 있어서는 그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제도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생업을 영위하기에도 숨가쁘고 일을 마친 후에는 육아 등 저마다의 사정으로 하루하루의 과제를 충실하게 수행해나가는 데에도 벅찬 현실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금융이나 경제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시간을 쪼개 관련 분야에 대한 공부에 열을 올리기도 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꽤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전문가 수준으로 금융지식을 갖추기도 어렵거니와 사회 전체적으로도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 측면이 크다.

얼마 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퇴직연금사업자의 '대표 포트폴리오 제도'가 시행되는 등의 변화로 금융당국이 우리나라의 연금자산운용 실태에 대해서 심각성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응원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디폴트옵션 제도도입은 여전히 늦춰지고 있어 여전히 근로자들이 주먹구구식 생애가계부를 쓰며 은퇴 이후에 '빈곤한 노후를 누릴 자유'를 누리도록 방관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근로자들이 생업에만 충실히 몰입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디폴트 옵션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