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머니투데이 트위터
통합검색

오늘의 증시

오늘의 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
2092.40 690.18 1128.50
▲4.34 ▲8.8 ▼0.7
+0.21% +1.29% -0.06%
양악수술배너 (11/12)조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10/18)
블록체인 가상화폐

"저 구해주실 수 있는 거죠?"

[이승형의 세상만사]

이승형의 세상만사 머니투데이 이승형 건설부동산부장 |입력 : 2016.09.21 04:09
폰트크기
기사공유
"저 구해주실 수 있는 거죠?"
“저 구할 수 있는 거죠?”

최근 개봉했던 영화 ‘터널’에서 주인공 하정우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개통한 지 2주도 안 돼 무너져 버린 대형 터널. 퇴근길 그 안에 갑작스레 갇히게 된 주인공. 눈앞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 뿐. 포스터 속 그의 눈빛은 절박하면서도 억울해 보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표정이다.

또 다른 포스터에는 ‘그 날 무너진 것은 터널만이 아니었다’는 친절한 설명이 적혀 있다. 그렇다. 엄청난 사고가 벌어지고, 영웅이 등장해 갖은 고초 끝에 가족들 혹은 이웃들을 무사히 구해내는 헐리우드 식 재난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터널’은 그 어두운 단어의 이미지만큼이나 어두운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가감 없이 끄집어낸다. 황금만능주의와 맞물린 생명 경시 풍조, 안전불감증, 무사안일의 전시행정, 선정성을 내세운 시청률지상주의, 그리고 각종 비리들. 이른바 ‘헬조선’이다.

자연스레 영화는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한 축이 돼버린 ‘각자도생(各自圖生:제각기 살 길을 꾀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어떤 형태의 재앙과 고난이 닥쳐도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나라. 이만큼 비정하고, 고독하며, 우울한 세상이 또 있을까.

지난 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난 지 꼭 일주일 만인 19일 저녁 3.9km 떨어진 곳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여진만 20일 오전 9시 현재 총 400차례. 전국이 때 아닌 지진 공포에 떨고 있지만 그 전조(前兆)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지진 통계가 시작된 1978년 이후 규모 2.0 이상의 지진은 1266회. 이 가운데 1998년부터 올해까지 3분의 2에 해당하는 863회가 발생했다. 지진이 더 잦고 커졌다는 의미다. 재앙은 아무 말 없이 오지 않는다. 수십, 수백 차례 경고를 보낸 뒤 오는 법.

하지만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던 지난 12일의 정부 대응을 보면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사전 예측은 고사하고 사후 대책도 전무했다. 그저 ‘지진이 일어났으니 주의하라’는 정도의 문자메시지만 있었다. ‘배고프면 밥 먹어라’ 수준이다. 그나마도 지진 발생 후 수십 분이 흐른 후였다. 재난 방송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별일 아니니 계속 자습하라’는 교사의 말만 맴돈다.

이쯤 되니 정부를 믿지 못한 경주 시민들은 비상식량 등을 담은 ‘생존가방’을 꾸리고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과연 이 정부에 ‘시스템’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한 것인가.

지진을 한 번이라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그 후유증이 상당하다는 것을 잘 안다. 물리적 타격이 없더라도 정서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려워진다. 일주일 내내 지진과 여진을 경험한 한 시민은 “다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울렁거리는 통에 어지러워 결국 오늘 아침 출근하지 못하고 병원에 갔다”며 “지진 트라우마는 실제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 심각성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인지, 행정자치부인지, 기상청인지, 국민안전처인지, 아니면 어느 지방자치단체인지 지진 사태 대응의 주체가 어딘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묻고 싶다. 만일 더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다면.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고층 건물이 즐비하며,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시스템의 나라’인 일본도 지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판에 정부는 어찌 감당할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는 또 그저 ‘천재지변의 불행’으로만 여기고 개인의 고군분투로 생존해야 하는가. 우리는 ‘터널’의 하정우가 돼야 하는가. 나를 구해줄 것이란 믿음을 가져도 되는 것인가. 영화보다 더 한 현실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요즘이라 더 불안해서 그렇다. 소를 잃었으니 외양간이라도 잘 좀 고쳐보자. 소 주인마저 잃어버릴 판이다.

이승형
이승형 sean1202@mt.co.kr

사실과 진실 사이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종료된칼럼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