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이혼' 4050 싱글남, TV까지 장악하다

# 백발 어머니의 얼굴에는 내내 근심이 서려있다. 마흔 중턱의 아들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없는 일상을 공개한다. 여자를 만나기 위해 클럽을 찾고, 친구들과 밤늦도록 술을 마신다. 혼자 사는 삶이 익숙한 이들은 결혼에 대해 당당하게 '노(No)'를 외친다. 이미 자신만의 삶에 익숙한 이들은 결혼은 장애물과 같다. 노모는 고개를 저으며 울상을 짓는다. -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 중에서


# 오십줄에 가까운 주인공은 강아지 4마리가 그의 가족 전부다. 홀로 자취한 지 20여년이 넘은 그는 혼자의 삶이 익숙하다. 외로울 틈도 없다. 아날로그 감성에 빠진 그는 옛날 비디오 테이프를 모으는 취미생활을 한다. '나이들어 보이지 않기' 위해선 자기관리가 필수다. 짠 음식은 피하고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각종 영양 보충제도 꼭 챙긴다. 가끔 외로워 결혼을 꿈꿀때도 있지만 안정적인 수입과 나만의 자유로운 생활에 점점 익숙해진다. -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중에서

40·50대 '싱글라이프'가 안방극장을 장악했다. 사람들은 이들의 일상을 훔쳐보며 즐거워한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지났거나 결혼에 실패하고 화려한 싱글로 부활한 중년 남성들은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됐다.

몇 년 전만해도 이들은 촌스러운 아저씨들에 불과했다. 한 공중파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장동건 외 4인방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 드라마는 '꽃중년'이라는 유행어까지 등장시키며 노총각의 신분을 격상시켰다. 경제력을 갖추고 자신만의 취미가 있고 스스로를 꾸밀 줄 아는 화려한 중년의 삶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제 4050세대는 '아재'라는 단어로 정체성을 찾았다. 푸근함과 여유로움을 강조하며 이 시대를 이끄는 감성이 됐다.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TV 프로그램도 점차 늘었다. 지상파에서 미혼 남녀 연예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나 혼자산다'나, '미운우리새끼'가 대표적이다.


나이 꽉 찬 싱글, 돌싱(돌아온 싱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은 청춘남녀의 짝짓기 프로그램을 대체한 지 오래다. 한 종합편성 채널의 '님과 함께2', 지상파의 '불타는 청춘'이 그 예다.

이같은 방송 트렌드 변화는 40·50대 남자 1인가구가 늘어난 것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40세~49세 1인 가구는 2005년 22만676가구에서 2015년 54만2018가구로 2배 이상 늘었다.

50대 남성 1인가구는 더욱 급격히 증가했다. 2005년 13만537가구에서 2015년 47만7685가구로 3배 가까이 늘었다. 기러기 가족이나 주말 부부가 많다는 가정을 하더라도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들이 전체 남성 1인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4050 남성 1인가구의 총합은 101만9703가구로 전체 259만2964가구의 39.32%를 차지했다.

임운택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중년층의 경우 자녀 교육 문제나 직장문제로 부부가 떨어져 사는 경우도 많지만 지난 10년간의 변화추이를 보면 이혼율 증가와 결혼 지연이 어느정도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30대가 대부분 취업이나 경제적 형편을 이유로 결혼을 미루는것이라면 40대 50대는 자발적으로 혼자 사는 것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단순히 1인가구의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대중문화가 이들 중심의 '쏠림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4050 싱글남이 상대적으로 씀씀이가 크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고(중위소득 이상) 안정적인 직장(정규직)에 일하는 남성(27.7%)의 비중이 여성(7.2%)보다 약 4배 많았다. 이중 30세 이상 55세 미만의 중년층이 좋은 일자리 중 28.2%를 차지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홀로 사는 40대 50대가 TV를 시청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나 익숙한 얼굴들을 주로 내놓는다"며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 활동했던 연예인들이 TV에 다시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중년 솔로 남성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은 중년층에겐 공감대와 판타지를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에겐 자신의 미래를 그리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며 "홀로 즐겁게 일상을 즐기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위 '아재' 중심의 40대 중심 소비문화가 계속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들의 소비력이 향후에도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임 교수는 "386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40·50대 싱글남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고 경제력도 있는 편이지만 이들도 노인이 된 후에는 돌봄이 필요한 대상이 된다"며 "또한 현재 2030 청년층이 실업과 비정규직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4050세대가 됐을 때 현재의 중장년층만큼의 소비력을 갖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