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부자인데 왜 나만 가난할까"

5000만이 넘는 인구, 3만 달러에 근접한 1인당 국민소득.

머니투데이가 창간 15주년을 맞아 지난 3개월간 연재한 ‘OECD20년 대한민국, 선진국의 길’ 기획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외형적 성장 지표로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진입했다”고 진단하면서 남은 과제들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들의 핵심제언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급성장해 온 대한민국의 경제 성적표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룩셈부르크, 스위스, 노르웨이 등 국민소득 8만~9만달러에 육박하는 국가들도 있지만, 인구 1000만명 미만의 소규모 경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성취는 충분히 평가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양적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 개개인에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또한 지속가능한 성장잠재력이 충분한지 여부다. 이 점은 한국인들이 스스로 선진국민이라고 여기지 않는 주된 이유다.전문가들 역시 이 점에 있어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다. 시스템 혁신이 필요한 이유한 이유기도 하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 경제를 지금까지 이끌어 온 산업화 시대 엔진이 경제여건이 성숙되면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이제는 가계와 기업이 함께 가는 성장모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국민소득에 비해 떨어진 복지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도 시급한 과제로 지적됐다. 우리나라는 그간 이른바 ‘추격형’ 경제모델로 빠른 성장을 이뤄냈지만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는 중국 등 신흥국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은 “제품 가격경쟁력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며 “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바이오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분야에 과감한 기술투자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는 “구글, 테슬라 등 최근 새롭게 부상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우리도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규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경제 시스템이 혁신에 관대해야 기술개혁이 지속되고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며 “사전적 규제보다는 혁신을 한 뒤에 사후에 허가해 주는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 위기도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금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교육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성장도,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없다”며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성장잠재력 위축과 재정 건전성 악화로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신속한 산업 구조조정과 노동·교육·공공·금융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은 특정정권의 과제가 아니라 한국을 위한 과제라는 것이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소홀했던 교육, 정치, 사회·문화 부문의 비효율성을 줄여 나가는 것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과제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우리 국민들이 매뉴얼이나 교과서에 있는 것을 익하고 따라 하는 능력은 출중하나 창의성과 시민의식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문제해결 역량을 높이고 기술개발에서 앞서 나가려면 무엇보다 교육개혁이 시급하다”며 “연공서열, 순환보직, 낮은 직무몰입도 등의 문제점도 노동개혁을 통해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