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 실신' 백남기 농민 사망…장례·대치 장기화

2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3층에 지난해 11월 경찰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은 백남기씨의 빈소가 차려졌다. /사진=방윤영 기자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의식을 잃었던 농민 백남기씨가 25일 숨졌다. 사고 발생 이후 316일 만이다. 향년 69세.

당장 백씨의 부검 여부를 놓고 유족과 수사당국이 대립 중인 데다 사고 당시 경찰 대응의 적절성·물대포 직분사와 지침준수 여부에 대해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반발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없이는 장례를 진행하지 못한다는 입장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백남기 대책위)와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씨는 이날 오후 1시58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졌다.

백씨는 지난해 11월14일 쌀가격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경찰은 청와대 진입을 시도하던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발사했고 백씨는 여기에 맞아 쓰려져 의식을 잃었다.

백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대뇌 50% 이상·뇌뿌리 등이 손상돼 의식불명 상태로 인공호흡기와 약물에 의존해왔다. 이날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316일만에 운명을 달리했다. 서울대병원은 직접적 사인을 급성신부전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대병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24일부터 이뇨제를 투입해도 소변이 안 나온다"며 "수혈·항생제투여·영양공급 등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의사도 전혀 손을 쓰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전날 정오쯤 백씨의 위중한 상태가 알려졌으며 유족은 병실을 떠나지 않고 임종을 지켰다.

경찰은 백씨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대책위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 진료 기록 등을 살펴볼 때 백씨의 뇌 손상 원인이 물대포가 분명한 만큼 부검은 또 다른 국가 폭력이며 부검 시도 자체가 사망 원인을 다른 곳으로 몰아가려는 저의가 있다고 의심한다.

경찰은 24일 밤부터 경찰 3개 중대 250여명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인근에 배치해 우발 사태에 대비했다.

25일 오후 3시30분쯤 3층 중환자실에서 영안실로 시신을 옮기는 과정에선 운구차를 둘러싸고 대책위 관계자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등 긴장 상황이 이어졌다.

경찰은 "병원의 시설보호 요청에 따른 공무집행 중"이라며 대책위에 해산을 요구했다. 이날 저녁 7시 현재까지 대책위와 경찰의 직접적 대규모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과 유족·대책위 관계자는 저녁 6시30분쯤 장례식장 지하1층 영안실에서 검시를 진행했다. 이번 사건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은 검시결과에 따라 부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빈소는 장례식장 3층에 마련됐다. 빈소 마련 직후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와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 등 각계의 발길이 이어졌다. 유족으로부터 장례절차를 위임받은 대책위는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이 나오기 전까지 장례를 끝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책위 소속 한선범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은 "책임자의 처벌도, 대통령의 사과도, 재발방지 대책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며 "장례일정은 계획도 없고 무기한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이날 저녁 7시부터 장례식장 지하 1층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백씨의 부검을 반대하고 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오른쪽 끝)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 참석해 답변을 하고 있다. 이날 청문회에 참석한 백남기씨의 딸 도라지씨(뒷줄 가운데)가 강 전 청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백씨의 사고 당시 치안총수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입장표명을 거부했다.

강 전 청장은 이날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백씨의 사망에 대해 입장을 밝혀달라는 요청에 "노코멘트하겠다"고 짧게 답하고 더 이상 언급을 피했다.

강 전 청장은 백씨가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은 직후부터 직접적인 사과를 거부했다. 민·형사상 절차가 마무리돼 법적 책임이 규명되면 사과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역시 특별한 입장을 내지 않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