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 실신' 백남기씨, 316일만에 숨져…부검 갈등

지난해 11월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은 백남기씨가 숨진 2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백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진=뉴스1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의식을 잃었던 농민 백남기씨가 25일 숨졌다. 사고 발생 이후 316일 만이다. 향년 69세.


사인은 '물대포에 의한 뇌손상'이 명확하다는 유족과 정확한 사인파악을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는 수사당국이 대립하는 가운데 검찰은 26일 부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사고 당시 경찰 대응의 적절성 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데다 야당 의원들이 특검 도입까지 언급하고 나서 진통이 예상된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백남기 대책위)와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씨는 이날 오후 1시58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졌다.

백씨는 지난해 11월14일 쌀가격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경찰은 청와대 진입을 시도하던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발사했고 백씨는 여기에 맞아 쓰려져 의식을 잃었다.


백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대뇌 50% 이상·뇌뿌리 등이 손상돼 의식불명 상태로 인공호흡기와 약물에 의존해왔다. 이날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316일만에 운명을 달리했다. 서울대병원은 사인을 급성신부전이라고 밝혔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5일 숨진 백남기씨의 사망 종류를 '병사'(病死)로 기록한 사망진단을 촬영해 공개했다./사진=방윤영 기자

경찰은 백씨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대책위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 진료 기록 등을 살펴볼 때 백씨의 뇌 손상 원인이 물대포가 분명한 만큼 부검은 또 다른 국가 폭력이며 부검 시도 자체가 사망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저의가 있다고 의심한다. 조문을 마친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병사'(病死)로 기재한 사망 진단 기록을 공개하면서 유족과 대책위가 반발하기도 했다.

경찰과 유족·대책위 관계자는 저녁 6시30분쯤 장례식장 지하1층 영안실에서 검시를 진행했다. 관할서인 종로경찰서는 "백씨의 정확한 사인을 확인해야 한다"며 서울중앙지검에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 검증영장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검시결과를 검토해 26일쯤 부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오늘 중으로 (부검여부) 가닥이 안 잡혔다"며 "내일(26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소는 장례식장 3층에 마련됐다. 빈소 마련 직후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와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 등 야당 인사들을 비롯해 각계의 발길이 이어졌다.

빈소를 찾은 야당의원들은 "사망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위해 특별검사제도(특검)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아직까지 청문회에서 백남기씨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다"며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을 방조하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라 생각해 특검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도 묻겠다"고 밝혔다.

부검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족이 동의하지 않는 부검을 실시하면 안 된다"며 "그건 고인을 두 번 모독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부터 장례절차를 위임받은 대책위는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이 나오기 전까지 장례를 끝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책위 소속 한선범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은 "책임자의 처벌도, 대통령의 사과도, 재발방지 대책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며 "장례일정은 아직 계획도 없고 무기한 이어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빈소는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돼 백씨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로 저녁 한때 장례식장 밖까지 긴 줄이 이어졌다. 이날 하루에만 시민 500~600명이 백씨를 조문했다고 대책위는 밝혔다.

대책위를 비롯한 시민 400여명은 이날 저녁 7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장례식장 지하 1층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백씨의 부검을 반대하고 정부의 책임규명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