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보험료로 배불리는 병원들..비급여 전문병원의 '강남스타일'

2014년에 국내에서 지출된 의료비 가운데 63.2%는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했다. 나머지 36.8% 가운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관리하는 급여 의료비 중 환자가 직접 부담하는 비율은 19.7%, 정부 통제를 받지 않는 비급여 부담률은 17.1%였다. 급여 자기부담률과 비급여 부담률만 놓고 보면 비중이 51.9%와 48.1%로 비슷하다.

하지만 보험사들이 병원에 지급한 실손의료보험을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한 대형 보험사가 지난해 실손보험금을 지급받은 병원을 조사한 결과 상위 10위안에 드는 대형 병원들은 대부분 비급여 비율이 60%를 웃돌았다. 특히 상위 50개 병원 중에서 근골격계 질환 특화 병원 6곳의 경우 비급여 비율이 80% 후반대에서 90%를 넘는 곳도 있었다.


비급여 의료비는 전적으로 자기 부담이다. 실손보험이 있으면 비급여 의료비를 80~90%, 많게는 100%까지 보장받는다. 병원이 지급 받는 실손보험금 가운데 비급여 비중이 전체 국민 의료비 현황에 비쳐 지나치게 높다는 점은 실손보험이 없으면 굳이 받지 않을 비급여 진료를 실손보험이 있으면 받게 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실손보험금 가운데 비급여 비중이 80~90%에 달하는 병원들은 국민 전체 의료비 지출 현황과 동떨어진 채 비급여 진료에만 주력한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병원들이 실손보험금을 많이 받을까. 규모가 큰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이야 당연히 실손보험금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생소한 병원이 웬만한 대형병원보다 더 많은 실손보험금을 타가는 사례도 있다. 이들 병원은 보험금 지급을 심사하는 보험회사 직원들 사이에 이미 유명하다.

◇대형 종합병원보다 보험금 더 타간 병원들, 비급여로 먹고 산다=실손보험금은 환자가 병원에 의료비를 내고 이를 보험사에 청구하는 방식으로 지급된다. 지난해 A보험사가 이런 방식으로 실손보험금을 받아간 병원을 조사한 결과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대학병원(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외에 300병상 미만의 ‘병원급’ 병원 6곳이 보험금을 많이 받은 상위 50위 안에 들어갔다. 이들 병원은 각각 8위(지급받은 실손보험금 52억원), 9위(47억원), 15위(35억원), 31위(26억원), 39위(24억원), 50위(21억원)에 올랐다. 이는 A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만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 병원이 지난해 전체 보험사에서 받은 보험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5대 대형병원’은 지난해 병원별로 많게는 159억원에서 작게는 64억원의 실손보험금을 받았다. 보험금만 놓고 보면 병상이 300개도 안 되는 병원급 6곳이 국내 5대 병원에 크게 밀리는 않는 셈이다. 이 가운데 서울 강남 지역에 위치한 실손보험금 지급액 39위 병원은 최근 몇년간 눈부신 약진을 보였다. 이 병원은 2011년에 A보험사에서 지급받은 보험금이 8억원에 그쳤으나 지난해에는 25억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같은 기간 이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보험금 청구 건수도 632건에서 1710건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실손보험금 지급액 상위 50위 안에 드는 병원급 6곳 중에는 일반인에게도 알려진 네트워크 병원도 있지만 이름조차 생소한 병원도 있다. 이들 병원의 공통점은 크게 2가지다. 우선 척추, 관절, 근육 등 근골격계 질환을 주로 다루는 특화 병원들(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지급받은 실손보험금 가운데 비급여 비율이 84~93%로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실손보험금 지급액 중 비급여 진료비가 많다는 뜻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많이 했다는 의미다. 반면 5대 병원의 경우 비급여비율이 61~69%로 70%도 채 되지 않았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지난해 A보험사에 실손보험금을 1000건 이상 청구한 병원 중 비급여 비율이 높은 20위권 병원을 보면 19개가 모두 근골격계 질환 특화 병원이라는 사실이다. 근골격계 질환 치료가 실손보험금을 많이 지급받는 비결인 셈이다.

◇병원에 연예인 사진 내걸고 스포츠센터 차려 놓고=근골격계 질환은 허리와 목 등의 통증이 대부분이다. 디스크 수술을 제외하면 도수치료나 추나요법 등 손이나 기계로 근육을 만지거나 자극하는 치료가 많다. 문제는 치료 효과가 주관적이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진료 단가가 크게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 때문에 근골격계 진료는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의 주타깃이 되기 쉽다.

실제로 최근 몇년 사이에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근골격계 질환 특화 병원들이 비급여 진료를 확대하고 있다는 게 보험업계의 전언이다. 보험개발원이 생명보험사에서 실손보험금을 받은 병원 2만4801개를 조사한 결과 보험금 청구건수가 1000건이 넘고 비급여 비율이 96%를 웃도는 상위 10개 병원 7개가 서울 강남에 위치했다. 나머지는 서울 중구, 경기도 분당, 경기도 의정부였다. 또 상위 10개 병원 모두 척추관절 병원이었다.

실손보험금 지급 심사를 담당하는 B보험사 관계자는 “성형외과가 번성한 서울 강남 지역에는 성형외과와 연계 마케팅이 가능한 도수치료, 체형교정, 각종 미용관련 치료, 고가의 영양제 주사 등 비급여 병원들이 최근 성행하고 있다”며 “강남 지역은 건물 임차료가 비싸 회당 치료 단가나 재료대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일부 강남 소재 척추관절 병원은 방문했던 연예인 사진을 로비에 걸어놓아 성형외과를 방불케 한다. 병원 안에 스포츠센터를 차려 놓고 도수치료의 일부로 운동치료를 권하는 사례도 있다. 비급여도 ‘강남스타일’로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 병원들은 회당 30만원의 체외충격파 치료를 시행하거나 면역첩약이라는 이름으로 약을 지어주며 실손보험 가입 환자에게 수백만원의 의료비를 청구한다. 영양제, 비타민 등 고가의 비급여 약물 투여를 권하기도 한다. 비급여 치료의 대표격인 도수치료의 경우 근골격계 병원들의 주수입원으로 자리 잡았지만 삼성병원, 아산병원 등 대형병원들은 아예 진료를 하지 않는다.

◇복지부 지정 없어도 제멋대로 ‘전문병원’...자성의 목소리도=근골격계 질환 전문병원을 표방한 병원은 전국적으로 약 500~6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의료업계는 추정한다. 문제는 이들 병원 대부분이 실제로는 ‘무늬만’ 전문병원이라는 점이다. 병원협회의 한 관계자는 “스스로 근골격계 전문병원을 표방하는 곳이 수백곳이지만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인증한 전문병원은 수십곳에 불과하다”며 “복지부 지정 전문병원의 경우 일반 병원과 달리 완치율이나 수술건수 등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지난해 지정한 전문병원은 모두 111개며 이 가운데 척추, 관절, 재활의학과 등 근골격계 전문병원은 약 50곳이다. 전문병원은 필수진료과목, 의료인력, 병상수, 의료질 등의 심사 기준에 따라 복지부가 3년마다 재심사한다. 하지만 복지부 인증을 받은 전문병원조차 국민 전체 의료비 지출 현황에 비쳐 비급여 비율이 높은 편이라는 지적이다. 복지부의 심사기준에는 비급여비율이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급여를 주수입원으로 일부 병원이 ‘배’를 불리고 있는 사이 비급여 의료비는 연간 20조원이 넘었다. 국민이 부담하는 비급여 의료비 비율도 2009년 14%에서 2014년 17%로 늘어났다. 비급여 의료비의 연평균 증가율은 10%가 넘는다. 비급여가 국민 의료비 부담으로 전가되자 의료업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병원들이 급여로는 적정 원가 보존이 안되다 보니 비급여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다만 일부 척추관절 병원이 실손보험을 악용하고 있어 각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