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이완구 前총리, 2심서 무죄(종합)

이완구 전 국무총리 /사진=뉴스1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66)가 2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상주)는 27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총리에 대해 "검찰이 제시한 증거 능력이 있는 증거들 만으로는 이 전 총리의 혐의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며 1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 한 일간지 기자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 이 녹음파일의 사본과 녹취서, 성 전 회장이 작성했던 메모 등에 증거 능력을 부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최대 쟁점이었던 부분에 대해 1심과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이 일간지 기자에게 이 전 총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당시 이 전 총리에 대한 강한 배신과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며 "이는 성 전 회장의 말 뿐 아니라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의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성 전 회장이 "지난번 보궐선거 때 한나절 정도 선거사무소에 가서 돈을 줬다"고 진술했지만 일시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전달한 금액에 대해 "한, 한, 한 3000만원"이라고 말했는데 이 역시 다른 정치인들 관련 진술과는 차이가 있어 금액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서 말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에 다른 6명의 정치인들의 경우 이름과 함께 금액이 기재돼 있지만 이 전 총리의 이름 옆에는 금액이 기재돼 있지 않은 점도 재판부가 성 전 회장의 진술과 메모에 신빙성이 없다는 판단을 하는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이 같은 이유들을 들어 "성 전 회장의 생전 진술과 메모에 나타난 진술 중 이 전 총리에 대한 부분은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공판에 나와 진술을 해야 할 사건 관계자가 사망하는 등의 이유로 진술을 할 수 없을 경우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상태)에서 했던 진술만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데 성 전 회장이 이 특신상태에서 진술을 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외의 객관적 증거들 만으로는 이 전 총리의 혐의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봤다. △경남기업 측이 사건 일시 이후 약 1주일간 비자금 계좌에서 3000여만원을 인출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이 전 총리에게 3000만원이 전달됐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이 전 총리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한 사건 관계자들이 진술을 할 당시 대부분 검찰 수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고 있었던 점 △성 전 회장이 공개된 장소인 선거사무소에서 수행비서에게 돈이 든 쇼핑백을 들고 오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이례적인 행동으로 보이는 점 등이 판단 근거가 됐다.

이날 무죄가 선고되자 방청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 전 총리의 한 지지자는 "이제 다시 한번 가자"고 외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심려를 끼쳐드려 마음이 송구스럽다"며 "재판부 결정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상고심이 남아 있으니 최선을 다하겠다"며 "검찰권 행사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정치활동 계획 등을 묻는 질문에는 "그런 것을 말하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사건은 성 전 회장이 자원외교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던 지난해 4월 정치권 인사 8명의 이름과 금품 액수로 추정되는 숫자가 적힌 쪽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시작됐다. 이어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직전 한 일간지와 나눈 인터뷰 내용까지 공개되며 정치권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인터뷰에서 성 전 회장은 이 전 총리를 비롯한 몇몇 정치권 인사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수사 끝에 이 전 총리가 2013년 4월4일 충남 부여 선거사무소에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상자에 포장된 현금 3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건네받았다고 보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 전 총리는 여러 차례 "돈을 받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해 4월27일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앞서 1심은 성 전 회장의 생전 진술과 메모,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 등을 모두 받아들여 이 전 총리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이 이 전 총리에 대한 배신과 분노의 감정으로 허위 진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성 전 회장이 먼저 녹음을 요청한 점,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명예를 중시하던 사람이 숨지기 전 거짓말을 남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