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발 내수쇼크' 어디까지...전전긍긍하는 정부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이 2만 9천 원 가격에 란이한상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 단기적으로 경제주체들의 혼란과 소비위축이 우려된다. 이른바 ‘3·5·10만원’ 룰의 적용대상이 워낙 광범위한데다 개별 사례마다 권익위의 유권해석이 필요할 정도로 제도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6월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조치가 끝났고 조선과 해운 등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상황에 김영란법이 내수와 고용한파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거시적 여파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단기적으로 내수조정은 분명히 있을 것 같다”면서 “직접적인 법 적용대상자들의 행태변화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정리되겠으나 규정적용이 모호해 적용대상자가 아니라도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소비를 하지 않아서 소비가 영향을 받는 게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단기적으로 일부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수요위축이 나타날 수 있고, 이들 업종의 고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JP모건은 최근 경제보고서에서 김영란법과 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 한국의 성장률이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JP모건은 “김영란법이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줄여 한국경제의 생산성을 제고할 것”이라면서도 “단기적으로는 불확실성에따른 내수감소를 촉발할 수 있고 대상자가 광범위하고 실행방법이 모호하므로 경제주체가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 까지 대외활동을 미루거나 줄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헌법소원 심판 사건 선고에서 합헌으로 결정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국농축산연합회 황태수 사무총장이 한우 5만원 세트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다만 정부와 민간 모두 구체적인 거시경제의 파장을 분석하는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단기 내수경제 충격을 분석을 시도했다. 산업연관표를 활용해 경제적 손실과 고용감소 인원 등을 추산하려 했던 것.

그러나 워낙 변수와 가정이 많아 지표로서 활용가치가 거의 없다는 판단에서 중단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청탁금지법이 앞서 시행된 접대비 실명제 이상의 소비위축이 있을 것으로 보고 분석을 해봤지만, 다소 무리한 가정이 많고 법이 어떤 방식으로 시행될지 알 수 없어 경제충격을 수치화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당장 경제적 파장을 수치화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워 일단 법 시행뒤 수개월정도 모니터링을 강화한뒤 본격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2013년 중국이 시행한 반부패 정책이 거시경제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들어 김영란법의 여파도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당시 고급음식점은 마이너스 성장했지만 반사적으로 중저가 음식점 매출이 늘어나는 조정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우리와 정치경제적 여건이 다르고 김영란법은 대상자가 400만명으로 광범위해 직접비교가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특히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타격이 예상되는 한우·과수·화훼 농가나 음식업종 등의 수요위축은 현실화되고 있다.

아울러 KDI 등 연구기관들은 이들 업종 종사자의 소득이 줄지만 기업의 생산비 즉 영업과 접대비용이 줄어드는 효과 때문에 거시경제에 미칠 파장이 미미하더라도 소득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때문에 이들에 대한 세제혜택 등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기업들이 절감한 접대비를 임직원 명절 선물로 활용하거나 정부, 공공기관, 기업 등의 사내식당에서 국내 농축산물 식재료 사용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제도 시행이 결정된 만큼 경제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것보다 어떻게 제도를 안착시킬지 고민해야하는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은 “청탁금지법은 단기적으로 불편과 혼란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공정한 경쟁을 통해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 사회에 안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경 KDI 원장은 “단기적으로 중소상인, 음식업종 매출 감소가 우려되나 한편으로 기업들의 접대비가 줄어 잉여금이 늘어나는 효과도 기대된다”며 “이런 부분들이 투자나 고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