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으로 튄 김영란법 불똥, 공정성·수익성 우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을 전후로 서울 강동구의 한 횟집에 김영란법 세트 출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김영란법은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포함한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이 있는 자로부터 3만원 넘는 식사 대접이나 5만원이 넘는 선물, 10만원이 넘는 경조사비를 받게 될 경우 과태료를 물게 되는 법이다. 2016.9.2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수백조원에 이르는 연기금 투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위촉된 민간위원들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인 '공무수행사인(私人·민간인)'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민간위원들이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을 경우, 이들이 몸담은 회사도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을 수도 있어 일부 민간위원의 이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연기금 투자의 전문성과 공정성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8일 관련업계 따르면 최근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대체투자위원회, 위탁사선정위원회 등의 민간위원들에게 '공무수행사인'으로 간주돼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을 수도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기금운용본부 준법감시팀 관계자는 "정부 부처가 설립한 위원회에 참여할 경우 민간인이라도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을 소지가 있으니 이를 유념해 달라는 내용을 민간위원들에게 발송했다"며 "권익위나 법원의 판결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일단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53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투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위원들을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시키고 있다. 투자와 관련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경우 한국영영자총회, 중소기업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에서 추천한 14명의 위촉위원이 있다. 10명 내외로 구성되는 대체투자위원회와 위탁사선정위원회의 경우 민간위원이 과반을 넘겨야 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각 위원들이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해 위원으로 남을지 여부를 결정해야할 것으로 본다"며 "위원활동이 회사에 부담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위원직을 사퇴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918억달러를 운용하는 국부펀드 KIC(한국투자공사)의 경우 운영위원회 소속 민간위원들도 '공무수행사인'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KIC 운영위원회는 KIC의 중장기 투자정책 등을 심의·위결하는 최상위 기구로 민간위원 6인 중 박천웅 이스프스프링자산운용 대표와 정경수 동부화재 부사장은 민간기업 출신으로 공무수행사인이 될 수 있다. KIC 관계자는 "KIC 운영위원 역할과 관련된 업무의 경우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연기금의 경우 '공무수행사인'에 대한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투자관련 업무의 경우 외부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데 민간기업 출신 위원 영입이 위축될 경우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일상생활 이외에 간헐적으로 연기금관련 업무를 하는 경우는 공무수행사인으로 보기에는 과한 측면이 있다"며 "민간기업 출신 위원들이 사퇴할 경우 이 자리는 이미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교수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밖에 김영란법 대상인 연기금 운용역들은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연기금의 한 주식운용팀장은 "증권사들로부터 시장전망이나 유망투자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제공받아 왔다"며 "앞으로는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부당하게 편의를 제공받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만큼 당분간 만남 자체를 갖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괜찮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투자관련 정보를 얻기 힘들어져서 자금을 운용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신규투자의 경우 기존 네트워크를 통해 제안을 해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부정청탁으로 간주될 수 있어서다. 공제회 한 관계자는 "새로운 콘셉트의 투자의 경우 알음알음으로 투자제안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일면식도 없는 투자처에서 새로운 투자제안을 해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