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城' 초고층 아파트…“외국처럼 층수규제 접점 찾아야”

@머니투데이 유정수 디자이너

일단 높게 짓고 보자는 식의 무조건적인 초고층 재건축 논리도 문제지만 일률적인 층수 제한도 능사는 아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영국 런던과 같이 각각의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스카이라인 계획으로 도시 경관에 다채로움을 부여하고 경관 자체를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사례도 적지 않다.


28일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등의 관련 연구에 따르면 서울처럼 사전 기본계획(2030 서울플랜)으로 도시 전역의 건축물 층고를 제한한 해외 도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도시 경관 관리를 위한 광역 관리계획상의 건축물 높이 제한이 있을 뿐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도시가 세워진 구릉지의 특성을 반영해 건축물 높이를 관리하고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언덕을 따라 건축물의 고저를 다채롭게 계획해 스카이라인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영국 런던은 강변, 시가지 등 각 위치별 조망에 따라 별도의 계획을 수립하고 층고를 관리하고 있다. 일률적인 높이 제한이 아니라 도시 경관을 시민이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가진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5년마다 마스터플랜을 개정, 건축물 높이를 제한한다. 싱가포르 역시 도시 전체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공간의 용도와 기능을 구분한 조닝(zoning) 개념으로 높이를 관리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층수를 높이고 건폐율(대지면적 대비 1층 바닥면적 비율)을 줄이면 단지 내 녹지공간 확보가 용이해져 주민들의 삶이 질이 높아진다"며 "건축 기술이 발전해 초고층으로 지어도 주변 경관과 어울리게 할 수 있는데 일률적으로 35층으로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진 우려로 인해 평면 개발만을 고집한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는 저층, 저밀도 개발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인구가 2000만명에 달하는 멕시코시티는 1980년대 1만여 명이 숨지는 최악의 지진 피해를 겪었고 이후 주거지 개발을 저층으로 제한했다. 그 결과 멕시코시티는 옆으로 옆으로 수평적 확대를 거듭했고 교통, 상·하수도, 치안 등 사회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고밀도 개발의 필요성에도 불구, 초고층 재건축이 특정 지역, 계층의 지나친 사익 추구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현재 서울에서 초고층 재건축 논의가 활발한 곳은 강남권과 여의도권역 등이다. 모두 서울에서 집값 비싸기로 손 꼽히는 지역들이다.

특정 지역에 초고층 주거단지가 집중되면 일부 부유층만이 지역을 공유하는 도시 속 '성(城)'이 생겨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리핀 마닐라 중심부의 부유층 주거단지가 대표적인 경우다. 도심 한복판의 부유층 아파트 단지가 블록을 형성하면서 교통 흐름은 물론 주민간 교류도 단절됐다.

이에 획일적인 높이 제한 규제에 따른 문제 해결과 개발 이익의 환수, 조화로운 도시 개발 사이에서 우리 현실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초고층 재건축이 부동산 투기나 국지적 개발 과열로 연결돼서는 안 된다"라면서 "초고층 재건축은 실제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정주 여건과 도시계획적 측면이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적정한 공간이 확보되는 경우는 고층 재건축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이를 지양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서울의 고층 아파트가 많아진 것은 초과이윤과 땅값을 높이려는 한국 특유의 부동산경제 때문"이라며 "고밀도 개발을 위해서는 무조건 고층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