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정' vs '중년 로맨스'…당신의 생각은?

'불륜'은 현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사람들의 흥미를 당기는 이야깃거리다. 누군가의 부정은 훔쳐보고 싶은 묘한 관음증 같은 심리가 작용한다. 남이 행한 금기를 몰래 보면서 느끼는 일종의 '대리만족'일 수도 있다.

나쁜 남편 혹은 아내의 은밀한 연애, 충실했던 배우자의 충격, 그리고 복수는 마치 공식같은 우리나라 드라마의 이야기 전개였다. 불륜은 비호감이었고, 불륜을 저지를 배우자는 반드시 '처단'당했다. 사람들은 시원한 결과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러던 우리나라 드라마 불륜의 공식이 언제부턴가 깨지기 시작했다. 불륜이 오랜 부부 사이보다 정당성을 얻기도 하고, 불륜의 '로맨스'가 부부 사이의 '정'을 넘어선 것.

배우 윤계상, 전도연, 유지태(왼쪽부터). /사진=뉴스1

가장 충격적 변화는 케이블 채널 tVN 드라마 '굿와이프'에서 시작됐다. 성매매로 불륜을 저지른 스타검사 남편(유지태 분)을 둔 김혜경(전도연 분)이 그를 오랜 기간 짝사랑한 서중원(윤계상 분)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진한 키스신을 나누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사실상 '불륜'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그러나 열광했다. 이 둘의 사랑을 응원하는 댓글도 이어졌다. 이 둘의 결합을 불륜이 아닌 '로맨스'로 봤다.

최근 시작된 드라마 KBS 드라마 '공항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김하늘·이상윤 주연의 이 드라마도 아슬아슬한 불륜을 서정적으로 다룬다. 가부장적 남편 밑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최수아(김하늘 분)와 다정다감하고 정 많은 서도우(이상윤 분)이 서로에게 보여준 '끌림'에 시청자들은 거부감보다 응원을 보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드라마의 '판타지'적 요소는 아니라고 말한다. 현실에서도 이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이혼율은 40대에서 가장 높다. 남성은 40대 후반, 여성은 40대 초반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가 각각 9.2건, 9.6건이었다. 40대 이혼율은 전체 이혼건수의 35%를 차지, 이혼을 가장 많이 하는 연령이기도 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최근 20대 초반 이혼과 60대 이상의 황혼이혼율이 상승하고 30·40대 이혼율은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이는 혼인율 자체가 낮아진 것을 일부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며 "우리나라 평균 혼인 유지율은 14년 정도로 30·40대 이혼 비중이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이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달라졌다는 분석도 있다. 조혜정 이혼전문 변호사는 "불과 10년 전인 2005년에만 해도 이혼은 곧 '인생 실패'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인식이 많이 줄었다"며 "이혼상담을 받고 이혼을 결정하는 시간들이 비교적 짧아졌고, 이혼 당사자들의 부모들도 자녀들의 이혼에 대해 예전만큼 부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이어 "간통죄 폐지 이후 불륜에 대한 수용도가 이전보다 높아진 것 같다"며 "불륜 후 보복이나 처벌보다 재산분할, 양육권 등 실질적인 문제를 논의하며 협의이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최근 드라마에서 다루는 내용은 불륜이라기보다 '중년로맨스'라고 보는 것에 적합하다고 본다"며 "과거에는 결혼 이후 폐쇄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면 최근에는 결혼 후에도 대면하는 사람들 자체가 많아지다보니 연애할 기회도 늘어난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어 "이는 개인의 행복 추구가 가족을 지키는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드라마들이 불륜 자체를 용인하기보다 어른이 성장하면서 겪는 일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공감을 얻는다는 의견도 있다.

정덕현 문화 평론가는 "간통죄 폐지 등 법적으로 불륜이 범죄는 아니지만 아직 대중들은 불륜에 대한 불편한 심리를 갖고 있다"면서도 "최근 드라마는 불륜보다 개인 인생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공감대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륜이 중심이 된 자극적인 이야기를 피하고 개인의 내면 문제와 행복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고 있다"며 "아이를 잃은 슬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성장, 가족애 등이 주를 이뤄 인간적인 고민을 보여주기 때문에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