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어린이집 교사부터 대학 교수까지" 교육현장 바꾸는 김영란법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은 영유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부터 유치원,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사회에 이르기까지 교육계 전반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김영란법 시행 첫 날인 28일, 교육현장에서는 뒤늦게 적용 대상자들을 상대로 교육을 실시하거나, 교사들이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이른바 '금지사항'을 전달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설명에 따르면 사립 어린이집 교사들도 이날부터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다. 사립 어린이집 교사를 법 적용 대상에 넣어야 할 지 여부는 막판까지 핵심 쟁점이었다. 사립 어린이집 교사들은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유아교육법 등에 따른 교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권익위는 누리과정이라는 정부 업무를 위탁받았다고 보고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포함했다.

이처럼 영유아 보육을 주 업무로 하는 사립 어린이집 교사들까지 적용 대상이 되면서 덩달아 학부모들도 혼란에 빠졌다.

4세 아이를 맡기면서 가끔 집에서 구운 쿠키를 교사에게 건넸다는 학부모 김모씨(송파구 풍납동 거주)는 "직접 만든, 정성이 담긴 음식조차 대가성으로 본다니 씁쓸하다"면서 "이젠 아이를 맡기며 '잘 부탁합니다'라는 말도 못하는 거냐"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유치원에 자녀를 학부모들도 반응은 비슷하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거주하는 학부모 송모씨는 "유치원에서 가정통신문을 받았는데 소풍날 선생님께 김밥, 커피 등을 줘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면서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를 맡기면서 잘 부탁한다고 마음의 표시를 하는 것 조차 안된다니 우리 정서와는 너무 다른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유치원 원장들은 부랴부랴 교사 연수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서울 소재 유치원 원장·원감을 대상으로 '김영란법 교육'을 실시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원장을 '김영란법 책임관'으로 지정, 법 위반 여부를 관리·감독하게 한다"면서 "학부모들에게도 통신문을 돌려 소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나 말을 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중·고교 현장도 김영란법 시행 준비가 안 되있기는 마찬가지다.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교원은 모두 적용 대상이지만, 학교일에 관여하는 학부모도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다수가 모르는 상황이다.

일례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학교폭력대책위원회(학폭위) 위원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다. 쉽게 말해 가해자 학부모가 찾아와 심의과정에서 선처를 부탁하거나 금품 등을 줄 경우 거절해야 한다는 뜻이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학교운영위원회 민간위원도 포함된다. 반면 녹색어머니회나 교육활동 도우미, 급식·도서도우미 등 학부모회 소속 회원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학부모들이 교사들에게 스승의 날이나 연말에 기프티콘을 보내는 관행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인천 소재 중학교 교감은 "당장은 적응이 안되겠지만 법이 잘 정착하면 좋을 것 같다"면서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 여파는 대학사회에도 미치고 있다.

대학원에서 졸업논문 지도 뒤 학생이 지도교수에게 호텔 등에서 식사대접을 하는 관행이 사라질 전망이다. 학부생과 석·박사생 모두 교수에게 학점을 올려달라는 말을 해서도 안 된다. 교수 역시 진로 및 취업 지도를 할 때 특정기관에 특정학생에 대해 '잘 부탁한다'고 말을 해서도 안 된다.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모씨는 "인성과 자질 모두 뛰어난 학생이 있는데도 이젠 로펌 등에 '참 괜찮은 인재'라는 말도 할 수 없게 됐다"면서 "교수의 역할이 단순히 가르치는 것으로만 한정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명예교수와 초빙교수를 김영란법 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형평성에 어긋나다"는 지적도 나온다. 명예교수의 경우, 퇴직은 했지만 여전히 대학의 주요 정책 등에 실질적인 입김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