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교포 '증도용'에 속수무책…건강보험은 '호갱님'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안정준 기자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선진국 수준이면서도 절대 의료비 규모는 낮은 편이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위해 약가와 의료수가를 워낙 강하게 조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비는 건강보험공단 부담을 제외한 환자 본인 부담률이 30%를 넘어 부담률 자체는 선진국보다 높다. 그러나 의료비 절대액 자체가 워낙 낮다. 이 때문에 고가의 의료비 부담에 시달리는 외국인과 재외국민(교포)들에게는 건강보험증을 도용(이하 증도용) 해서라도 한국에서 치료받고자 하는 유혹이 클 수 밖 에 없다.

◇입국 후 3개월이면 보험자격 부여 = 공단은 2012년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재외국민 152만 명 가운데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94만 명이 부정수급 유혹에 노출돼 있다고 본다. 보험료를 내면 떳떳하게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이마저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다.

현행 제도는 외국인과 재외국민은 입국 후 3개월이 되면 보험 자격을 부여한다. 이때부터 국내에 직장이 없어도 지역가입자로서 보험료를 내면 내국인과 똑같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다.

왕복 항공료와 국내 체류비를 감수하더라도 불법 보험혜택을 누리려는 시도는 허술한 규제에서 비롯됐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는 병원 등이 환자 본인 확인에 대한 의무 규정이 없다. 병원에서 보험증 또는 신분증을 통해 본인 확인을 꼼꼼히 하지 않는 이유다.

이들 중에는 단순히 부정수급에 그치지 않고 약물을 외부에 판매하는 2차 범죄 흔적도 나온다. 증도용자 L씨(여·65)의 경우 사돈과 동네주민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2009년 10월부터 14개월간 병원과 약국을 돌며 정신신경용 약물과 최면진정제를 4016회 처방받아 3200만원의 공단 부담금을 발생시켰다. 공단은 L씨가 이렇게 모은 약을 불법 판매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호갱님' 건강보험…외국인·재외국민 보험적자 눈덩이 =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은 "3개월 거주기간 요건을 갖추면 보험자격이 주어지는데도 많은 교포들이 증도용을 한다"며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잖아도 합법적으로 보험에 가입한 외국인과 재외국민에 의한 건강보험 수지 적자 행진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공단에 따르면 2009년 42만 명이던 외국인·재외국민 가입자가 지난해에는 80만 명으로 2배 가량 늘었다.

걷은 보험료와 나간 보험료 차액인 보험 수지는 2011년 920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1924억원 적자로 4년 만에 2배를 넘어섰다.

가입자 중에는 한국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한국의 보험혜택만 누리려는 이들도 포함됐다. 재외국민 N씨(62·여)는 2009년 6월부터 2014년 2월까지 12회 출입국을 반복하면서 백혈병 등 진료를 받아 1억2300만원의 보험혜택을 누렸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N씨가 낸 건강보험료는 5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N씨 같은 가입자들의 의료비를 보조하는데 내국인들의 건보료가 투입되고 있다.

◇본인 확인 의무화 시급…처벌규정도 강화해야 = 합법과 불법이 뒤섞인 외국인과 교포의 치료목적 한국행은 한국 의료비가 워낙 싸기 때문이다.

미국 보건의료연구소(Agency for Healthcare Research and Quality)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미국 내 관상동맥우회수술 평균 진료비는 9만4500달러(약 1억300만원). 반면 건강보험 적용 후 국내 대형 병원비용은 800만~1000만원에 불과하다. 추간판제거술의 경우 미국은 4만3235달러(약 4700만원), 한국은 150만~200만원이다.

급여대상이 아닌 경우도 비용 차이가 상당하다. 전립선암수술(로봇)을 보면 미국은 1만8902달러(약 2000만원), 한국은 1000만~1200만원 수준이다. 이처럼 압도적인 한국의 의료비 경쟁력 이면에는 건보재정 위기가 도사린다. 공단 노조는 인구감소가 시작되는 2018년 국고지원이 끊길 경우 그해 7조4000억여원 보험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내외국인을 차별하지 않고 보편적 의료복지 취지를 이어가는 범위에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진형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병원 등 의료기관의 본인 확인 의무화를 법제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법으로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게는 보험자격을 정지시키고 사용한 사람은 지하철 무임승차 수준(요금의 30배)의 벌금을 물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3개월치 보험료만 내면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현행 외국인·재외국민에 대한 보험혜택 기준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