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첫날 점심시간, 식당가 빈방 '텅텅'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정부서울청사 구내식당에서 임직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예전 같으면 방이 꽉 차야 하는데 빈방이 많아요."

28일 낮 1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교대역 인근의 고급 일식집.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날 종업원들은 '불안한 여유'를 맞고 있었다.


평소보다 손님이 너무 없어 본의 아니게 한가한 모습이었다. 10여개의 방 중 절반은 비어있었다.

식당 관계자는 "평소 자주 오던 판·검사들은 물론 기타 공무원이나 기자들도 코빼기를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 와 있는 손님들은 거의 다 상대적으로 김영란법에서 자유로운 개인사업자나 경제적 형편이 좋은 주부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달부터 이미 매출이 반 토막 나서 사장님이 임대료, 인건비 걱정을 하고 있다"며 "계속 이 상태가 이어지면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스럽다"고 불안해했다.


인근 건물 지하 1층에서 27년간 영업해온 유명 한식당도 손님이 줄어 울상이었다. 업주는 "다행히 우리 식당은 퇴직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면서도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3만원 이하 메뉴를 준비해줄 수 없냐는 문의가 오늘만 10건 넘게 있었다"고 설명했다.

코스 메뉴가 주력인 한식당들은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맞춤형' 메뉴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단골손님들의 특별 요청을 거절할 수도 없어 비공식적으로 맞춤형 메뉴를 준비하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식당가는 말 그대로 김영란법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서초동 일대 주변 일식집, 한정식집 중에는 폐업을 하거나 업종을 전환한 경우가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만난 사람 수만큼 나눠서 각자 내는 더치페이를 하면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는 게 관련 업계 사람들의 얘기다.

한 대기업 대외업무 담당자는 "업무 관련해서 일상적으로 모임이 잦은 법 적용 대상자들은 매일같이 더치페이를 할 돈이 없다"며 "더치페이를 하더라도 나중에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 싫어서라도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가 있는 여의도 식당가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63빌딩의 한 고급 중식당은 손님 있는 테이블을 찾기가 어려웠다. 1인당 6만~10만원 상당 코스요리를 내놓는 이 식당에는 그나마 김영란법을 적용받지 않는 고객들이 한 두 테이블 자리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점심시간에 늘 손님이 붐비는 여의나루역 주변 일식집은 이날도 손님이 많았다. 그러나 식당 관계자는 "손님들이 대부분 1인당 3만원 이하로 주문을 해 매출은 뚝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근처 소고기를 파는 식당 관계자도 평소 점심시간보다 30% 가까이 손님이 줄었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