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혁명이 일자리 없앤다? 다만 형태바뀔 뿐"

카이스트 이민화 초빙교수. / 박용훈 인턴기자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과거 산업혁명과 같이 일자리 형태를 바꿀 뿐 일자리 총량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대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해외 연구기관들의 관측과 거리가 있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한국노동연구원(원장 방하남)이 30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개원 28주년 기념세미나에서 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인공지능과 일자리의 미래'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는 "다보스 포럼과 가트너 그룹, 영국 옥스포드 연구소 등은 인공지능으로 촉발될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 대란을 경고하고 있다"면서 "다보스 포럼은 500만 개의 일자리가 선진국에서 사라지고 옥스포드 대학은 미국 일자리의 47%가 20년 내 사라질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전망을 온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그동안 3차례 산업혁명에서는 생산성 증가를 상쇄하는 새로운 인간의 욕구와 수요가 나타나면서 전체 일자리의 총량을 줄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대부분 욕구를 충족시킬 4차 산업혁명에서는 결국 인간들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으로 기존 산업을 변모시키거나 충돌을 일으키는데, 특히 자율주행차나 구글의 통역서비스처럼 빅데이터, 클라우드서비스, 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과 하드웨어의 결합은 기존 운전기사와 통역사 등의 일자리를 대체하거나 위협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공급과 수요 측면의 일자리 변화상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이와관련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제시한 △생존 △안정 △사회성 △자기표현 △자아실현 이어지는 '욕구 5 단계설'을 차용해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문제를 검토했다.

그 결과 1차(증기, 기계), 2차(전기) 산업혁명은 매슬로우의 1, 2 단계인 생존과 안정의 욕구를 충족하는 '물질 혁명'이고, 3차(인터넷) 산업혁명은 매슬로우의 3 단계인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는 '연결의 혁명'이었다고 정의했다. 이어 4차 산업 혁명은 매슬로우의 4, 5 단계인 자아표현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혁명으로 봤다.

이는 결국 로봇과 인공지능에 재화와 서비스 생산을 위탁한 인간은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인문의 혁명'에 돌입한다는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의 일자리는 우선 인간의 자기표현 욕구에서 비롯될 것"이라며 "개인의 소비가 정체성을 결정하는 ‘경험경제’가 도래하고 있고 물질이 아니라 시간이 가장 중요한 경제 자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산업혁명 과정에서 분리되었던 생산과 소비는 고효율의 집단 지능으로 다시 결합하는 '디지털 DIY(스스로 제작)가 일반화'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 교수는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막연한 관측에 얽매이기 보다는 바람직한 미래를 디자인하기 위해 인공지능의 활용을 극대화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새로운 4차 일자리 창출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미래는 인공지능과 로봇 등 초생산을 담당하는 과학기술 인재와 개인의 협력적 소비를 담당하는 놀이와 소비의 인재, 그리고 생산과 소비의 분배 구조를 담당해 갈 사회적 인재라는 세 가지 인재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진 패널토의에서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의견들이 제시됐다.

서동혁 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인공지능은 새로운 환경적응에 한계가 있는 반면 사람은 유연성을 가지며 앞으로 일자리 역시 인간의 유연성과 확장성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희 카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술결정론의 시각에서는 80년대 정보화사회 담론처럼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식의 숙명론론 관점이 주를 이루는데 기술이 고용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사회형성과 구성론의 시각에서 상호작용한다고 봐야 한다"면서 "정보기술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될것이라고 토플러 등 미래학자가 예측했지만 어긋났듯이 기술은 개발하는 과정에서 어떤 선택과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바람직한 정책적 대응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단장은 "최근 국내 4차 혁명 논의는 해외에서 하니까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는 식의 추격형 관점으로 이뤄져 한계가 있다"고 비판하고 "우리가 창조경제나 선도형 경제로 가려면 추격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비전에 따라 기술을 접목하는 식으로 우리만의 궤도와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허재준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엔지니어나 미래학자들은 직무와 직업, 일자리를 구분하지 않거나 혼돈한다"면서 "기술진보와 생산성 증가로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걱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조직이나 정부의 시스템이 기존 산업화시대의 틀에 갇혀 새로운 산업혁명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에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정책도 신기술 대응에만 무게를 둬서 연구개발예산만 늘려서는 결국 수조원의 예산만 낭비하고 로봇물고기 같은 엉뚱한 정책만 양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