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강제입원' 20년 울분 달래준 헌재 결정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날, 보러와요' 보셨나요? 주인공은 서울 한복판에서 "OOO씨, 본인 맞느냐"고 묻는 의문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납치됩니다. 차에 실려 오게 된 곳은 정신병원. "나 미친 사람 아니에요. 정상이에요. 나 좀 내보내주세요." 아무리 소리쳐봐도 소용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강제입원된 것입니다. 정신보건법 24조 1항 등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조항 때문인데요. 1995년 제정된 이 법은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전문의 진단이 있는 경우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지난 20년간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가족간 재산분쟁에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이 법 조항이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악용·남용될 수 있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위헌이지만 법적인 공백과 사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 개정 시한을 둔 것입니다.

헌재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침해할 수 있어"
먼저 헌재 결정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헌재는 "강제입원이 신체의 자유를 인신구속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으므로 침해를 최소화하고 악용·남용 가능성을 방지해야 한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 조항은 그러지 못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습니다.

헌재는 입원치료를 받을 정도의 정신질환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고 악용될 소지가 있는데도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보호의무자가 부양의무에서 벗어나거나 정신질환자의 재산을 뺏기 위한 목적으로 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과전문의 한 사람의 진단으로 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한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헌재는 "판단 권한을 전문의 1인에게 전적으로 부여해 자의적 판단, 권한 남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다"며 "경제적 이익 때문에 진단 권한을 남용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헌재는 △입원기간을 6개월로 정하고 있는 대목 △당사자가 사전에 진술을 펼 기회가 없다는 점 △치료 필요성을 이유로 통신·면회가 제한되는 점 모두 헌법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침해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강제입원자 63.5%, 입원기간은 3655일…불법 이송·감금·폭행도 문제
영화 속 장면은 현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헌재는 실제 벌어진 일들을 염두에 두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헌재는 "보호의무자 2인과 정신과전문의의 공모로 강제입원된 사례는 실제로 종종 발생해 사회문제가 됐다"며 "사설 응급이송단에 의한 정신질환자 불법 이송, 감금·폭행 같은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통계로도 드러났습니다. 2013년 기준, 정신의료기관에 입원 중인 환자 8만462명 가운데 강제입원된 환자는 5만1132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의 63.5%를 차지한 것입니다. 입원기간이 짧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 통계도 있습니다. 평균 입원기간은 정신의료기관의 경우 176일, 정신요양시설의 경우 3655일로 집계됐습니다.

이번 헌재 결정을 받아낸 제청신청인 A씨는 2013년 11월 자녀 2인의 동의와 전문의 진단에 따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됐습니다. 그는 당시 갱년기 우울증을 앓았을 뿐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을 정도의 질환은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건강이나 타인의 안전을 해할 염려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개정 법안, 인권 구제 도구 될까…"내년 5월 시행 앞둔 법안도 역부족" 지적
새롭게 다듬어질 법은 헌재 결정 취지를 담아내야 합니다. 국회가 지난 5월 개정한 법안은 내년 5월부터 시행되는데, 각각 다른 기관에 소속된 전문의 2명의 진단을 필요로 하고 퇴원 심사 주기를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 요건을 엄격히 했습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 법으로도 악용·남용 가능성을 방지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헌재는 이 같은 개정안이 기존 문제점을 해소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결정문에 싣지 않았습니다.

법 제정으로부터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더이상 정신병원에 부당하게 갇혀 지내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조만간 개정될 법이 그들의 인권을 구제하는 도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환자들에 대한 적법한 조치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