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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짚던 양반, 택배 일 몇년 후 두 다리로 나갔다니까 하하"

[보니!하니!] '평균나이 75세' 실버택배원과 동행한 하루…"힘들어도 뿌듯"

머니투데이 이슈팀 김도영 기자 |입력 : 2016.10.22 06:30|조회 : 5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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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동 주공14단지에는 18명의 실버택배원들이 있다. /사진=노원구청 제공
상계동 주공14단지에는 18명의 실버택배원들이 있다. /사진=노원구청 제공

"지팡이 짚던 양반, 택배 일 몇년 후 두 다리로 나갔다니까 하하"
"여든 넘어서도 자식들한테 내가 아직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친구들이랑 막걸리 한잔 하고 계산할 때마다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체력만큼은 자신 있어."

평균나이 75세,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에는 5000세대의 택배를 책임지는 18명의 실버택배원들이 있다. 100세 시대, 은퇴 후에도 "우린 아직도 사회인이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경로당은 일터이자 쉼터
오전 9시. 상계주공 14단지아파트 경로당은 아침부터 활기차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경로당 밖에까지 세어 나온다. 첫 택배트럭이 들어오려면 아직 1시간 넘게 남았지만 대부분 택배원들은 이미 출근한 지 오래. 이 경로당은 택배 물류센터이자 어르신들의 쉼터인 셈이다.

이곳에서 실버택배 사업을 시작한 건 2010년. 이후 노원구청의 도움으로 지난 1월 협동조합을 결성해 전문적으로 택배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18명의 실버택배원들이 상계주공 12·13·14단지 총 5000세대의 택배 배송을 담당한다. 1명당 아파트 네동 정도를 맡아 그날 도착한 택배를 각 가정으로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하루 평균 택배만 1000여개

CJ대한통운을 통해서만 하루 약 700여개의 택배가 배달된다. /사진=김도영 기자
CJ대한통운을 통해서만 하루 약 700여개의 택배가 배달된다. /사진=김도영 기자
"트럭 왔다"는 한마디에 경로당이 들썩인다. 자리에 앉아있던 택배원들은 벌떡 일어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순식간에 컨베이어벨트가 설치되고 택배 트럭에선 상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 하루 들어오는 택배만 1000여개.

"1402동! 1204동! 이건 1508동."
택배는 동별로 신속정확하게 나눠지고 택배원들은 본인 구역으로 배달된 택배를 호수별로 차곡차곡 쌓는다. 눈이 침침해 상자 윗부분에 동과 호수를 큼직하게 적는 건 필수이자 센스.

◇배달준비 완료…수레부터 전기차까지 동원

5년차 실버택배원 이은호(77) 어르신이 배달준비를 마치고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다. /사진=김도영 기자
5년차 실버택배원 이은호(77) 어르신이 배달준비를 마치고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다. /사진=김도영 기자
배달방법은 수레·리어카부터 시작해 전기차까지 다양하다.

이날 기자는 5년차 실버택배원 이은호(77) 어르신의 하루를 동행했다.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부탁하자 배달할 때마다 쓰는 모자가 필수라며 헐레벌떡 방 안으로 들어가 옷 매무새를 정돈한다.

오전에 배달할 물량은 약 20여개. 오후 물량까지 합치면 하루 50여개의 택배를 배달한다. 보통 크기의 박스는 전기차 화물칸에 싣고 부피가 크거나 긴 물건은 차 위에 고정시킨다.

그는 능숙하게 전기차를 몰고 담당 구역인 13동 앞에 차를 주차시켰다. 화물칸에서 꺼낸 택배를 작은 수레에 옮겨 실으면 본격적인 배달이 시작된다.

◇힘 부칠 때 많아…체력은 필수
이날 배달할 택배 중 하이라이트는 20kg짜리 감자 한박스, 어린이용 접이식 책상 그리고 녹은 냉동수산물이었다.

아무리 엘리베이터로 이동한다지만 50kg에 달하는 카트를 끌며 동과 동 사이를 하루 평균 세네번씩 오고가는 건 20대인 기자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무게가 가벼워도 부피가 크면 성인 1명이 팔을 뻗어 들기에도 역부족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낡아서 수레 하나 들어가기에도 좁고 사람이 타기도 전에 문이 닫혀버려.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몸이 부딪히는 건 부지기수인데 얼마나 아픈지 몰라."

5년차 베테랑 택배원이지만 여든을 바라보는 그에게 택배원 일이 고되고 힘든 일임은 분명했다.

이날 택배배달 도중 스티로폼 박스 밑에 악취가 나는 액체가 흘러나왔다. 냉동생선이 배달 중 녹은 모양이다. 해당 집 문을 연신 두드렸지만 부재중이었다. 수령인에게 전화를 걸어도 이 또한 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비린내 나는 상자를 들고 경로당으로 다시 되돌아와야 했다. 이날 이은호 택배원은 같은 택배를 아침저녁으로 두 번 배달했다.

◇택배일 하는 이유? 첫째는 '건강', 둘째는 '자식들 본보기'
"얼마 전에 그만 둔 양반인데. 그 사람은 처음 이 일 시작할 때 지팡이 짚고 들어왔어. 한 몇 년 일하다가 그만 둘 땐 두 다리로 건강히 나갔다니까 하하”

이승희 실버택배 협동조합 이사장(80)은 유독 택배원들의 체력에 자신감을 보였다. 택배를 옮기고 싣는 것 자체가 운동이 되고 주소지 글을 읽고 쓰는 게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일흔 넘은 우리에게 누가 일거리를 줘."

실버택배 일을 시작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대부분 어르신들은 이렇게 답했다. 이들은 생계보다는 건강, 용돈벌이 그리고 자식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평균 근속 기간은 3~4년, 2010년 실버택배 사업 이후 지금까지 6년째 근무한 어르신도 있다.

일흔이 훌쩍 넘은 노인들에게 일자리 찾기란 쉽지 않다. 아파트 경비원도 업계에선 65세가 마지노선. 이들에게 실버택배원은 말 그대로 '꿀보직'이다. 자식들에게도 부모로서 당당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1년차 실버택배원 A씨는 "아들 딸들이 한 달에 용돈 10만원씩 주지만 일 안 할 때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르지. 아버지가 일흔이 넘었어도 아직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라고 말했다.

◇택배 하나당 500원…'아쉬움 남아'

20kg 감자 한박스와 100g 남짓 상자 모두 건당 500원으로 계산된다. /사진=김도영 기자
20kg 감자 한박스와 100g 남짓 상자 모두 건당 500원으로 계산된다. /사진=김도영 기자
대부분 실버택배원들은 '이정도 용돈벌이라도 하는 게 어디냐'며 만족스럽게 일하지만 막상 주머니에 남는 돈은 많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들이 택배회사로부터 얻는 수입은 건당 500원. 문제는 성인 남성이 들기 힘든 20kg짜리도 500원, 100g도 안돼 보이는 택배도 500원이라는 것이다.

하루 평균 50여개의 택배를 배달하며 받는 일당은 약 2만5000원. 주 6일 근무해 얻는 수입은 한 달 50만원 정도다.

"내가 직접 가서 문 두드리는 게 낫지. 택배 하나당 겨우 500원 받는데 일일이 전화 하면 휴대폰비가 더 많이 나올 거야." 미리 전화한 후 배달하는 게 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한 어르신은 이렇게 답했다. 건당 500원보다 더 나올 전화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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