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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는 '미국차'? 외래어 안 쓰고 하루 살아보니

[보니!하니!]쓸 때마다 1000원… "통컵에 주세요" 하니 점원이 당황, 오후되니 말수↓

머니투데이 이슈팀 조현준 기자 |입력 : 2016.10.09 13:46|조회 : 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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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 /사진제공=뉴스1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 /사진제공=뉴스1
아메리카노는 '미국차'? 외래어 안 쓰고 하루 살아보니
술자리에서 흔히 즐기는 게임으로 '훈민정음'이란 게 있다. 이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대화 중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할 때마다 술을 마시면 된다. 예컨대 '핸드폰', '샐러드' 등 외국어가 조금이라도 섞인 단어를 말하면 벌칙 대상이다.

이 게임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말 지킴이'가 되어 머릿속에서 순우리말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크서클'은 눈그늘, '에코백'은 친환경 가방, '소셜 커머스'는 공동할인구매로 표현하는 식이다.(이는 실제 국립국어원이 순화한 말이다)

기자는 한글날을 앞두고 이 게임을 하루 일과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퇴근 후 잠자리에 들 때까지 외래어와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했다면 그 순간을 확인해 벌칙을 수행한다. 근무 시간에는 동료 기자들에게 말을 감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외 시간은 '양심적으로' 스스로 감시하기로 했다.

벌칙은 외래어 사용 횟수당 1000원씩 벌금 적립이다. 적립금은 '국립한글박물관'에 기부한다. 왠지 '한글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기부 대상지로 정했다.

무모해 보이는 이 일에 뛰어든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 단순 호기심에서였다. 외래어와 외국어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얼마나 힘들지 알고 싶었다. 둘째, 글을 도구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평소 언어 습관을 돌아보고 싶었다. 굳이 사용할 필요 없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쓰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고치고자 했다.

오전 9:00 - "커피 주문받습니다"에 출근하자마자 위기
출근하자마자 차장 선배로부터 '커피를 사 올 테니 주문하라'는 쪽지가 왔다. 기자는 당당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요'라고 외치고 말았다. 아차, 싶었다. 주변 동료들의 질책이 이어졌다. 시작하자마자 외래어 1개 사용으로 1000원을 적립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바꿔 말하나 싶으면서도 이 단어가 엄연한 외래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옆자리 기자는 "얼음가득 미국차"라고 말하는 정성이라도 보였어야 한다고 했다.

이후엔 벌금 적립의 연속이었다. "이 '캡처'사진 써도 될까요?" "어제 김제동씨 '토크콘서트' 어땠나요" "아웅산 '테러' 기사 좀 찾아봐" 등 무심코 말한 말에는 어김없이 외래어나 외국어가 섞여 있었다. 이어폰을 '귀로 음악 듣는 장치'라고 표현하는 둥 나름 돌려 말하는 전략을 쓰기도 했지만 외래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전에만 외래어 사용으로 7차례 걸렸다.

그중에는 기자들끼리 쓰는 은어도 있었다. "선배, 이 기사 야마가 잘 안 잡혀요"라고 말했을 때 횟수가 한번 추가됐다. 일본어로 '산(山)'을 뜻하는 '야마'는 기자들 사이에서는 글의 주제, 논조, 방향 등을 뜻하는 용어로 공공연하게 쓰인다.

◇ 점심시간 -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통컵에 포장구매 해주세요."

매일 들르던 별다방(스타벅스)에서 이렇게 주문했더니 점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통컵'은 텀블러의 순화어이고 '포장구매'는 테이크아웃의 순화어다. 두 단어 모두 순화어보다는 기존 외래어 표현이 익숙하다.

2014년 국립국어원이 텀블러를 대신할 말로 '통컵'을 발표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외래어는 그냥 외래어로 두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국립국어원이 순화한 단어 중 '누리꾼(네티즌)', '안전문(스크린도어)' 등 정착에 성공한 말도 있지만 '통컵'처럼 외면받은 말도 많다. 문득 이런 단어를 굳이 찾아서 써야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말을 가려 사용하다보니 오후 근무시간에는 평소보다 빠르게 피곤함이 몰려왔다. 오전에 비해 말수도 많이 줄었다. "외래어 안 쓰고 사니까 어떻냐"는 선배의 질문에 "멘탈 나갈 것 같아요"라고 대답해 벌칙 횟수가 추가됐다. 오후에만 5차례 벌칙 횟수가 추가됐다.

◇ 막바지에는 한국어 검열관으로 승화
퇴근 후 회사 근처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었다. 문득 친구들의 말을 검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일상 대화에서는 국적불명의 외래어가 많이 쓰이고 있었다.

단어마다 붙이는 '갓'이라는 수식어도 심심찮게 들렸고 '팩트폭행', '어그로끌다' 같은 합성어도 자주 등장했다. 예전에는 안 그랬을 텐데 그런 단어들이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출근길에 듣는 샤이니 노래 스테레오 사운드가 좋아"라는 친구의 말에 '스테레오 사운드'를 어떻게 우리말로 바꿀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가 핀잔을 듣기도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일과를 정리했다. 두 가지 느낀 점이 있었다. 첫째, 과도한 순화어 사용은 오히려 대화를 불편하게 한다. 둘째, 그럼에도 우리 대화에는 불필요한 외래어 단어가 많이 섞여 있다. 이를 의식적으로 줄여 나간다면 언어가 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물론 순화어의 범위는 단순 단어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접속사나 조사 등에도 순화가 필요한 표현이 많다. 국립국어원은 2만 개가 넘는 한국어 표현을 순화대상으로 지정해 공개하고 있다. 이를 다 지키진 못하더라도 틈틈이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종일 주의를 기울였지만 하루 동안 20차례나 외래어를 섞어 말했다. 벌금은 총 2만원이었다. 직접 기부금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 국립한글박물관 후원회원으로 가입해 1년 3만원씩 연회비를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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