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금지법' 그래서 문제는?…"여성 인권" vs "태아도 생명"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에서 모자보건법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낙태가 불법이라고 해서 낙태가 줄어들었나요? 낙태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임신한 여자들이 안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한 누리꾼이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 중)

"태아도 생명입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임신된 태아가 자신의 것인양 마음대로 취급하며 낙태를 하려고 해요. 어떤 아이라도 우선 태어나야 하며 세상의 따뜻함을 경험하게 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시켜야 합니다."(낙태반대운동 단체 관계자)


정부가 18일 낙태를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의료진 처벌을 강화하기로 한 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진들의 강력한 반발과 낙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반영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처벌 규정 완화와 별개로 '낙태금지법' 자체에 대한 논의는 계속 진행 중이다. 낙태를 반대하는 측은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 여성의 생명권이 침해받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물음도 만만치 않다.

한 폴란드 여성이 지난 3일(현지시간)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낙태전면금지법에 반대하는 '검은 월요일' 시위에서 옷걸이를 들고 행진에 나섰다. 옷걸이는 낙태 불법 국가에서 사용하는 자가낙태 도구 중 하나로 낙태 합법화의 상징이다./AFPBBNews=뉴스1

◇미혼모·미성년, 강간 증거 없는 경우 '낙태 불가'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낙태 수술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물론 현행법상 임신중절수술(낙태)이 전면 금지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낙태 시술은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모자보건법상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한 경우△임신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인 경우 합법적인 시술이 가능하다. 다만 이마저도 임신 24주 이내에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 성폭력의 경우 더욱 그렇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성폭력으로 인한 낙태의 경우 반드시 형사 고소나 검사가 기소를 한 경우에만 성폭력에 의한 임신이라고 인정돼 낙태가 가능하다"며 "이걸 증명하는 과정에서 임신 주수가 늘어 낙태가 안되고 검사가 성폭력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피해자가 출산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를 입증하지 못한 이들 중 일부는 상담소를 통해 병원을 찾는데 이곳 의료진들의 경우 상담소만 믿고 수술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수술을 거부하는 의료진도 적지 않은게 현실이다.

구글에서 경구용 낙태약 '**진'을 검색하면 뜨는 화면./사진=검색 화면 캡처

◇'태아 생명권' 우선시한 낙태 금지, 여성 생명권 위협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1년 약 16만9000명이 낙태 시술을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낙태 시술의 대부분이 음성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수술 건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어떻게 낙태를 할까.

낙태 시술이 '불법'으로 규정돼 많은 여성들은 큰 비용을 들이고도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수술을 받는다. 태아의 생명권 때문에 오히려 여성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온라인에선 경구용 낙태약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구글에서 '**진'을 검색하면 누구나 손쉽게 해당 약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약의 출처가 불분명하고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엔 중국산 가짜 낙태약을 미국산 진품으로 속여 100명이 넘는 임신여성에게 판 조직의 배송책이 처벌받기도 했다. 낙태약을 복용한 여성들이 심각한 부작용을 겪거나 심한 경우 자궁 수술을 한 여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우회 관계자는 "법에 떠밀려 음지로 몰린 여성들은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고 수술 비용도 부르는 게 값이라 적게는 150만원~400만원까지 든다"며 "건강, 나이, 경제적 여건 등 낙태를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한데 정부는 안일하고 획일적인 사고방식으로 낙태를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1년 '인공임신중절 예방 공모전'에서 포스터 부문 대상을 탄 작품

◇현행법상 낙태 시술, 여성만 처벌하는 현실

"낙태든 출산이든 결국 신체적 심리적 부담이나 위험 감수는 늘 여자 몫이다. 남자는 대체 어디에 있나. 누구도 종교나 남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현행법상 법에서 정해 놓은 사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낙태했을 경우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과 수술을 한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는다. 실제로 지난 6월 춘천지법 형사 1단독 송승훈 부장판사는 낙태 혐의로 기소된 외국인 여성 A씨(26)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이유에서였다.

낙태 수술을 하기 위해선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상대 남성에 대해 처벌을 묻는 경우는 없다. 이 때문에 남성이 낙태를 하려는 여성에게 금전적 협박이나 관계 유지 등을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 구트마허 연구소에 따르면 매년 7만여명의 여성이 자가낙태, 비위생적 시술 등으로 사망한다. 약 800만명의 여성은 낙태수술의 후유증이 남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뉴스1

◇원치 않은 아이, 태어난 후 미래는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도 사생아로 태어나 9살때 강간, 14살때 아이를 낳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흑인 제1위 자선 사업가로, 기업인으로 잘 자라지 않았느냐."

낙태 반대측의 논리대로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도 훌륭히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3년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교도소 수감자 중 성폭력 사범 64%, 살인범 60%가 성장 과정에서 가정폭력을 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지원도 부족하다.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24세 이하 청소년부모로 이뤄진 한부모 가구는 1만6140가구로 집계됐다. 이중 모자 가구만 1만2913가구.

하지만 여가부가 지원하는 미혼모 보호시설의 입소정원은 전국 △미혼 임신여성이나 출산 후 보호가 필요한 여성 550명 △2세 미만 영유아 양육하는 미혼모 332가구 △출산 후 아동을 양육하지 않은 미혼모 10명 등에 불과하다.

민간시설이나 부모님의 보호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 미혼모자 가구가 보호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합법적 낙태 시술을 지지하는 한 남성은 "만약 아이의 생명권이 그렇게 소중하다면 이 아이가 태어나 차가운 땅바닥에, 베이비 박스에, 고아원 문 앞에 버려지는 건 괜찮은지 묻고 싶다"며 "낳고 버려지는 아이들은 정부에서 책임질테니 일단 낳으라는 뜻인지 그렇다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