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도 입은 방탄복, 우리 파출소에는 없다

오패산 총격전으로 목숨을 잃은 고(故) 김창호 경감. 김 경감은 총격전 당시 방탄복을 걸치지 못한 채 현장에서 피의자와 대치했다./ 사진제공=뉴스1

흉악범도 걸친 방탄복을 정작 일선 경찰관들은 입지 못하는 실정이다. 오패산 총격전 당시 임무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은 고(故) 김창호 경감(54·사진)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십 수년 지난 노후 방탄복을 일부 지구대·파출소에서 소량 구비 중이지만 그나마 보급률은 절반도 안 된다.

경찰은 늘어나는 총기 사건에 대비해 내년까지 모든 지구대·파출소에 방탄복을 보급할 방침이지만 부족한 예산으로 그 시기는 계속 늦어지고 있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 전국 1982개 지구대·파출소에 보급된 방탄복은 총 1001벌이다. 지구대·파출소 2개당 1벌도 안 되는 수준이다.

2인1조로 순찰차에 오르는 경찰 출동 상황을 고려하면 두 사람 모두 방탄복을 입기란 불가능한 현실이다. 이번과 같은 다급한 총기 사고가 터지면 일선 경찰관들은 보호장비조차 없이 현장에 나서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일선 지구대·파출소에 방탄복이 보급된 상황은 마치 군대에서 군인은 1000명인데 총은 200자루 밖에 없는 꼴"이라며 "필요하면 다른 지구대·파출소에서 빌려 오라는 소리인데 이는 신속한 출동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당치 않은 얘기"라고 말했다.

19일 오패산 총격전에서 부상을 입고 숨진 번동파출소 소속 김 경감도 방탄복 한 벌 제대로 입지 못한 채 현장에서 피의자 성병대(46)와 대치했다. 정작 성씨는 방탄복을 입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오패산 총격전도 3~4분 만에 모든 상황이 종료됐다"며 "실질적으로 순찰차마다 방탄복을 실어 놓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양을 보급해도 모두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방탄복을 용케 갖췄다 해도 실제 임무에 사용하기란 만만치 않다. 2002년 제작·보급돼 올해로 15년째 사용 중인 구형 방탄복은 1벌 무게만 9.6㎏에 달한다.

긴급한 상황에서 10㎏에 육박하는 방탄복 무게는 임무 수행의 걸림돌이다. 분초를 다투는 현장 상황을 감안하면 입기가 어렵다는 게 경찰관들의 설명이다.

현재 전국 모든 일선 지구대·파출소에서는 방탄복 대신 칼처럼 뾰족한 흉기를 막는 방검복을 비치 중이다.

순찰차 1대당 방검복 2벌을 구비해 강력사건 등 유사 상황 발생으로 출동할 경우 방검장갑 등과 함께 착용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방검복은 방탄복과 기능 자체가 다르다.

서울 한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방검복은 날카로운 물체를 막는 데만 특화돼 있어 회전하는 총알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는 어렵다"며 "방검복은 총알에 뚫린다"고 말했다.

경찰은 올해 안으로 전국 지구대·파출소 50%에 우선적으로 방탄복을 지급하고 내년까지 나머지 50%에도 나눠줘 보급률 100%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보급할 방탄복 물량은 총 8100벌이다.

경찰이 방탄복 보급 계획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경찰은 지난해 2월 경기도 화성시에서 발생한 엽총 난사 사건으로 당시 이강석 남양파출소장이 숨지자 "방탄과 방검을 겸용할 수 있는 보호복을 일선 파출소와 강력 형사들에게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족한 예산 탓에 실제 방탄복 보급은 늦어지는 상황이다. 올해 방탄복 보급을 위해 경찰이 확보한 예산은 총 29억원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내년도 방탄복 보급 관련 예산 확보를 위해 정부, 국회와 조율 중"이라며 "예산이 허락하는 수준에서 내년까지 최대한 많은 방탄복을 일선 경찰관들에게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패산 총격전에서 피의자가 이용한 수제 목재 총기. 김 경감은 피의자가 쏜 총에 맞아 인근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폐 부위 손상으로 결국 숨을 거뒀다./ 사진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