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판례氏] 용의자-목격자 일대일 대면…범죄현장선 가능한 이유는?

범죄가 일어났지만 CCTV 등의 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범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의심이 가는 용의자가 범인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게 된다. 이런 절차를 ‘범인식별 절차’라고 하며, 경찰이 범죄자를 밝혀내는 이 절차에 대해 법원은 일정한 기준과 요건을 정해두고 있다.



# 2007년 11월 새벽 4시 반께 혼자 걸어서 집으로 귀가하던 여성 A씨는 뒤편에서 갑자기 나타난 남성 B씨가 자신의 겨드랑이 사이로 두 손을 넣어 가슴을 움켜쥐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B씨는 A씨를 밀쳐 땅바닥에 넘어뜨리고는 몸 위에 올라타 피해자의 어깨와 가슴 부위를 주먹으로 2차례 정도 때린 뒤 태연히 걸어갔다.

A씨는 이런 B씨를 뒤쫓았고, 때마침 순찰활동 중이던 경찰을 만나 경찰차에 탑승해 경찰관들과 함께 B씨를 찾아 나섰다.

경찰관들은 곧바로 도주하는 B씨를 발견해 경찰차로 추격했지만 B씨가 오른쪽으로 나 있는 작은 골목길 쪽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약 20m의 거리를 두고 눈앞에서 그를 놓치고 말았다. 경찰관들은 B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약 3초 만에 곧바로 그 골목길 입구에서 경찰차에서 내려 골목길 주변을 둘러봤지만 B씨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관들은 그 골목길의 주택들을 탐문했고, 우측 입구 주택 2층에 부부가 젊은 아들, 딸과 함께 거주한다는 내용의 진술을 듣게 됐다. 이에 경찰관들은 그 주택 2층에 거주한다는 젊은 남자가 B씨, 즉 범인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B씨의 아버지로부터 승낙을 받고 그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경찰관들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A씨를 데려와 B씨와 대면을 시켜 범인이 맞는지를 물었고, A씨가 "범인이 맞다"고 대답하자 그를 체포했다.

재판 과정에서 문제된 부분은 용의자였던 범인과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A씨를 현장에서 직접 대면해 범인임을 확인한 점이었다. 판례는 범인식별 절차의 요건을 상당히 까다롭게 보아 용의자가 범인이 아님에도 범인으로 지목되는 일을 최소화하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 대법원(2008도12111)은 “범인식별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용의자의 인상착의 등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서 용의자 한 사람을 단독으로 목격자와 대질시키거나 용의자의 사진 한 장만을 목격자에게 제시하여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기억력의 한계 및 부정확성과 구체적인 상황 하에서 용의자나 그 사진 상의 인물이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무의식적 암시를 목격자에게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방식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서의 목격자의 진술은, 그 용의자가 종전에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든가 피해자의 진술 외에도 그 용의자를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다른 정황이 존재한다든가 하는 등의 부가적인 사정이 없는 한 그 신빙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범인식별 절차에서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게 하려면, △범인의 인상착의 등에 관한 목격자의 진술 내지 묘사를 사전에 상세히 기록화한 다음, △용의자를 포함해 그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에 목격자와 대면시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해야 하고, △용의자와 목격자 및 비교대상자들이 상호 사전에 접촉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사후에 증거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대질 과정과 결과를 문자와 사진 등으로 서면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A씨와 B씨의 일대일 대면을 통한 법인식별 절차를 허용한 이유는 범죄 발생 직후 목격자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현장이나 그 부근에서 범인식별 절차를 실시하는 경우에는, 목격자에 의한 생생하고 정확한 식별의 가능성이 열려 있고 범죄의 신속한 해결을 위한 즉각적인 대면의 필요성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A씨가 사건 현장에서부터 B씨를 쫓다 경찰관들과 동행해 B씨를 발견한 상황에서는 A씨의 기억이 생생한 바로 직후였기 때문에 용의자와 목격자의 일대일 대면도 허용된다는 의미다.


◇ 판례 팁 = 범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 자료(CCTV 등)가 없는 경우에 피고인(또는 피의자) 측에서는 범인식별 절차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말이다.

미국에서도 판례를 통해 범인식별 절차가 인정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런 절차는 '불확실한' 인간의 기억에 의존해 범인을 식별한다는 점에서 오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법원은 상당히 까다로운 요건을 들어 예외적인 상황에서 범인식별 절차를 인정하고 있다.


◇ 관련 조항
- 형사소송법
제199조(수사와 필요한 조사)
① 수사에 관하여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 다만, 강제처분은 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안에서만 하여야 한다.
② 수사에 관하여는 공무소 기타 공사단체에 조회하여 필요한 사항의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

제308조(자유심증주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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